[2006] 오키나와 낙도 기행 1
4년이 넘는 지긋지긋한 전문연구요원 생활이 끝났다. 난 해외여행을 한 번 해야 겠다고 생각했다. 서류에 도장받아가지고 병무청 들락거리며 허락받아 가는 거 말고 민간인 신분으로 우아하게(?) 슬쩍 한 번 나갔다 오는 기분을 실감해 보고 싶기도 했지만, 일단은 그것보다도 무사히 민간인이 됐으니 그걸 기념삼아 가기로 했다. 소위 말하는 '나에게 주는 선물'이랄까 그런 건데 그런 닭살돋는 명칭은 됐고 하여튼 그러기로 했다.

오키나와를 고른 이유는 별거 없고 그저 남국의 바다에 가고 싶었기 때문이다. 남쪽 나라의 따뜻한 바다에 들어가서 물고기도 보고 산호도 보고... 하지만 혼자서 가는 여행이니 가급적 휴양 리조트스러운 곳은 좀 피하고 싶었다. 과장해서 말하면 혼자서 몰디브 배낭여행을 갈 수는 없으니까. 그냥 별로 사람 없는 한적한 바닷가에서 슬그머니 놀다가 내키면 다른 데도 구경 가고 하는 식으로 소박하게 여행하는 게 목적이랄까. 그러니까 일단은 남국의 바다지만 휴양 여행이 아님을 분명히 한다. -_-

아무튼 그래서 오키나와로 정하고 열라게 사전조사 및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러던 와중에 오키나와는 이미 섬 전체가 관광지화 되어서 바다도 리조트화 된 곳이 많고 어쩌고 하다는 얘기가 들려와서 좀 더 아래로 내려가는 것으로 계획을 급변경. 어디까지 가느냐 하면 갈데까지 간다는 것으로, 이왕 가는 거 더이상 내려갈 곳 없는 막장을 향하는 것으로 결정했다.

대충 위치를 보면 아래 그림과 같다.


오키나와가 있고 그 밑으로 400km남짓 떨어진 곳에 이시가키섬[石垣島]을 비롯한 야에야마[八重山]제도가 있다. 바로 옆에 대만이 코앞에 있는 저런 데까지가 어떻게 일본땅인지는 좀 수상한 구석이 있었지만 일단 넘어가기로 했다. 지도에 이시가키라고 써 있는 섬이 그 부근 섬들의 모임인 야에야마 제도의 베이스캠프쯤 되는 곳이어서, 일단 이시가키로 간 후에 다시 거길 거쳐 주변의 섬으로 가는 그런 개념이다.



야에야마 제도의 지도는 대충 이렇게 되어 있다.
이번에 가기로 한 섬은 세 군데로 이시가키섬, 이리오모테섬, 다케토미섬 이렇게다.

오른쪽 밑에 따로 표시되어 있는 하테루마[波照間]섬이 일본 최남단 섬이고 요나구니[与那国]섬이 일본 최서단 섬이다. 특히 하테루마섬의 바닷가가 죽인다고 하는데 너무 멀어서 이번 일정으로는 도무지 견적이 안나와 그냥 다음에 가기로 했다.

어디를 갈 지 정했으니 다음에는 어떻게 가면 되는지 알아보는 게 순서인데 여기서부터 막히기 시작했다. 도무지 정보가 없다. 오키나와 본섬에 대한 여행정보는 꽤 많다. 한글로 된 공식 관광안내 사이트도 있고 여행기도 제법 올라와 있다. 그런데 주변섬에 대한 정보는 정말 거의 전무한 형편이었다. 검색을 해보면 그냥 그런 섬들도 이러이런 게 있어서 좋으니 한번 가봐라 정도의 얘기뿐이다. 그래 다 좋은데 어떻게 가는지 얘기는 해줘야 할 거 아닌가. 할 수 없이 서투른 일본어 쳐가면서 일본 야후 같은데를 뒤지기 시작했는데, 역시 일본 국내 여행지라 그런지 일본어 정보 사이트는 꽤 있었다.

어찌어찌 삽질한 끝에 일본 국내선 비행기표 예약하고 주변섬으로 가는 페리도 예약하고 무사히 준비는 할 수 있게 되었다. 자세한 방법은 다음의 별도 페이지를 참고하고. ⇒ ( 오키나와 주변섬 교통정보 - (1) 이시가키 섬까지 )

자유여행이라지만 항공권만 딸랑 사서 가려고 했는데 도무지 비싸서 살 수가 없었다. 오키나와는 도쿄 같은 데와는 달리 할인항공권이 별로 할인이 안된다. 아시아나가 거의 독점하는 형편이라 그런지 50만원대에서 가격이 형성되어 있다. 그래서 그냥 여행사의 자유여행 패키지를 이용했다. 3박4일 일정에 항공권+숙박료의 구성인데 오키나와 본섬에서는 1박만 할 거지만 할 수 없이 그냥 그걸로 했다. 롯X관광에 329,000원(Tax 55,000원 별도)짜리가 있어서 낼름 예약했다. 일본여행 전문으로 꽤 유명한 여행박X에도 오키나와 자유여행 패키지가 있는데 롯X관광보다 조금씩 비싸서 별로다. 단, 롯X관광은 모객정원이 차지 않아 취소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어느 정도 출발을 보장받으려면 여행박X쪽이 낫다.



아무튼 날짜가 되어 출발했다. (2006.09.07 09:20)

일단 출발할 때 서울의 날씨는 꽤 좋았다. 하지만 이때 뚱딴지같이 허리케인이 미국으로 안 가고 우리나라와 일본 쪽으로 오고 있다고 해서 얼마나 가슴을 졸였는지... 태양이 없는 남국의 바다는 의미가 없다. 갈 이유가 없는 거다. 망하는 거다. 허리케인 덕분인지 일기예보에도 현지 날씨가 4일내내 흐리고 비라고 해서 초 우울모드였다.



기내식이 나오길래 낼름 먹고.
별건 없지만 그래도 밥이 나오는 게 어디냐 하며 싹싹 비웠다. 새벽부터 생쑈를 해서 배가 고팠기 때문에...

밥을 먹고 있노라니 기장이 친절하게 현지 날씨를 얘기해 주는데 맑다고 해서 제발 그러기를 열라 빌었다. 아, 일본 승무원이 한 명 있었는데 꽤 귀여웠다. 하지만 국가 이미지 제고를 위해 찝적거리진 않았다. 이미 나이가 아저씨인데 그런 아저씨짓까지 하면 완전 변태아저씨 확정이 되어 버리기 때문에 이후로도 조심 또 조심했다.



오키나와 나하공항 도착.
비행기에서 나오자마자 훅끈 열기가 느껴지는 게 장난이 아니었다. 공항 앞에는 이렇게 야자수도 서 있고 어쨋든 남국 기분은 나는데 사람들은 일본사람이고 말도 일본어이고 해서 묘하게 이질감이 느껴졌다. 이 이질감은 여행하는 내내 사라지지 않았는데 이런 언밸런스한 점이 오키나와 여행의 맛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하공항의 국제선 청사는 코딱지만하다. 얼른 옆 건물 국내선 청사로 들어가서 2층으로 가면 오키나와 유일의 철도인 모노레일 타는 곳으로 갈 수 있다. 모노레일 이름은 '유이레일'이란다.



유이레일 1일권을 샀다. 600엔으로 하루동안 무제한 이용할 수 있는 건데 기본요금이 200엔이니 세 번만 타면 본전은 뽑는다. 어짜피 슈리성도 가고 할 거니 당장 샀다. 나중에 슈리성 가면 또 이 1일권이 도움이 된다.



숙소의 체크인은 3시부터지만 짐도 맡길 겸 해서 일단 게스트하우스에 도착했다. 미에바시[美栄橋]라는 역 근처에 있는 '소라하우스'라는 곳이다. 조기 위에 사진과 같은 길을 1분 정도 걸어가면 나온다.

연립주택 같은 건물의 4,5층을 쓰고 있어서 처음에 현관이 안보여 좀 당황했다. 계단을 올라가야 되는데 바로 앞에 졸라 문신을 한 무서운 놈이 올라가서 순간 쫄았다. 숙소 잘못 잡은 건가 잠시 후회를 하며 올라가는데 알고보니 이 놈은 2층에 사는 주민이었다. 결국 무사히 짐 맡기고 홀가분하게 나와서 대충 구경이나 하며 체크인 시간까지 때우기로 했다.

주변섬에 가는건 내일부터기 때문에 오늘은 어떻게든 여기 오키나와 본섬의 나하 시내에서 때워야 한다. 근데 사실 여기서 뭐할지는 별로 대책이 없었다. 여행의 포인트가 아니었으니 그냥 대충 하루 보낼 생각으로 왔는데 그래서 유명하다는 슈리성에나 가보기로 했다.



다시 모노레일 타고 슈리성으로.



슈리성 가는 길에 뽑아 마신 레몬 스쿼시. 다른 회사 음료수는 다 110엔 이상인데 이 회사꺼만 유독 100엔이라 잔돈 만들기 싫어서 샀다. 맛은 평범한 레모네이드 맛.

슈리성에 가려면 슈리역에 내려서 좀 걸어야 한다. 가이드북에는 꽤 먼 거리를 걸어야 한다고 나오고 그래서 역과 슈리성을 연결하는 100엔짜리 셔틀버스를 권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냥 걸어가는 게 낫다. 셔틀버스 타는 곳은 역에서 나오면 바로 있긴 있는데 한시간에 두세 대밖에 없어서 재수 없으면 땡볕 아래서 이삼십 분을 기다려야 한다. 그 시간이면 걸어가고도 남으니 그냥 걸어가는 게 좋다.




가는 길엔 이렇게 간간히 해가 나기도 하고 갑자기 구름이 끼기도 하고 변화무쌍한 날씨가 계속됐다.

근데 가지고 간 필름 카메라가 고장이 난 건지도 모르고 가져가서 찍어댄 탓에 사진이 저렇다. 카메라는 계속 초점이 전혀 안맞는 사진을 생산해 내다가 결국 다음날 완전히 사망하셨는데 그래서 그날까지 저카메라로 찍은 사진은 다 저렇다. -_- 빨리 발견하고 카메라를 바꿨어야 했는데...



조금 걸으니 거의 다 왔다. 연못 너머로 슈리성이 보인다.



슈리성의 현관(?)이랄 수 있는 그 유명한 슈레이몬이 나왔다.
오키나와를 대표하는 이미지로 쨍하게 파란 하늘이 배경인 슈레이몬 사진이 쓰이는 경우가 많다. 사진으로 하도 봐서 익숙하기까지 하다. 근데 날씨가 구리고 카메라도 고장나서 사진이 이렇다. 게다가 문 바로 뒤에는 발굴작업 공사가 한창이라 경관도 영 별로다. -_-



그래도 일단 기념촬영을 했다.
오키나와 여행 기념으로 특별히 가지고 간 2000엔짜리 지폐를 꺼내어 같이 찍었다. 2천엔 지폐의 모델은 인물이 아니고 바로 이 슈레이몬이다.

여담이지만 오키나와는 원래 류큐왕국이라는 독립된 국가였다. 수백년을 이어간 이 왕국은 중국과 한국, 동남아 등과 중계무역을 하며 꽤 번성했었다. 주로 중국의 영향을 많이 받았지만 한국의 문물도 꽤 많이 들어갔는데 특히 조선에서 건축 관련 인력을 파견하여 기술을 전파하기도 하였다. 그래서 슈리성에도 원래는 우리나라의 건축 양식이 많이 녹아들어가 있었다.



이 사진을 보자. 이상하게 낯설지가 않다.
마치 우리나라 어딘가에 있을 것 같이 생긴 이것은 복원되기 이전의 슈레이몬이다. 기와를 얹는 구조와 모양새가 중국과는 다르며 우리나라의 양식을 완전히 빼다 박았다. 사실 현재의 슈레이몬을 비롯한 슈리성 전체는 2차대전 이후에 새로 복원한 것이다. 2차대전때 완전히 폐허가 됐던 곳이 오키나와니까 슈리성도 예외가 아니었던 거다. 그런데 복원이 너무 화려하게 된 게 아닌가 싶다. 또 군데군데 있던 한국풍 양식을 배제하고 중화풍 양식에 치우쳐 복원한 느낌이 든다. 특히 이 슈레이몬이 심한데, 한국식의 수수한 처마 라인은 사라지고 위쪽으로 휜 중국풍의 처마 라인으로 바뀌어 이전 모습과 심하게 이질적이다.



그렇다고는 해도 전체적으로 슈리성은 고대 성의 모습과 느낌을 꽤 갖고 있어서 좋았다.



슈리성 정전 앞에 있는 매표소.
정전에 들어가려면 여기서 표를 구입해야 한다. 800엔이지만 유이레일 1일권이 있으면 20%할인이 되어 640엔에 구입할 수 있다. 이 경우 자판기에서 구입하지 말고 매표소 직원에게 1일권을 보여주고 할인된 가격으로 구입해야 한다.



옆에는 이런 휴게소도 마련돼 있다.
매표소나 휴게소도 슈리성의 경관을 해지지 않도록 성과 어울리는 양식으로 지어 놓았다. 휴게소 안을 들어가 보면,



이런 식으로 의자와 다다미로 된 마루가 있다. 저 마루에서 드러누워 쉬어도 뭐라 할 사람은 없지만 나는 아저씨라서 내가 그러면 아저씨짓이 되기 때문에 참았다.

표를 내고 안쪽으로 들어가면 정전이 나온다.







정전은 꽤 중국스럽게 생겼다. 근데 바닥에 정전 문까지 쫙 나있는 길이 이상하게 방향이 비뚤어져 있다. 왜 그렇게 되어 있는지 지금도 궁금하다.


이 사진은 복원 이전의 원래 슈리성 정전 사진이다. 미묘하게 다른 듯한 느낌이 드는 건 단지 컬러와 흑백의 차이에서 오는 것만은 아닐 지도 모른다.





정전에는 시사도 많이 달라붙어 있다. 그런데 얘네들은 또 유난히 메롱을 하고 있는 애들이 많다. 왜 그렇게 되어 있는 걸까. 슈리성은 수수께끼에 싸여 있는 불가사의한 건축물이다.

슈리성 구경을 대충 마치니 3시가 얼추 되어 간다. 슬슬 돌아가서 체크인을 하면 딱 좋겠다 생각하고 내려오는데 여기서 이번 여행의 최대 삽질을 하고 말았다. 그냥 처음에 들어온 슈레이몬 쪽으로 내려가서 거기서 100엔짜리 셔틀버스를 타고 역으로 가면 최선이었을 것을, 다른 길로 내려가본다고 출구라고 화살표 된 길을 따라서 생각없이 가버린 것이다. 그쪽으로 가면 이런 아기자기한 샛길이 나온다.




일본의 길 100선에 뽑힌 유명한 길이랜다. 뭐 길 자체는 꽤 예쁘게 생겨서 괜찮은데 솔직히 너무 짧은거 아니냐 투덜거리며 내려왔는데, 이미 이 길을 들어선 이상 슈리역과는 멀어지고 있는 것이었다. 그것도 모르고 신나게 내려가서 조금만 걸어가면 슈리역이겠지 하며 가는데 걸어도 걸어도 역이 나올 생각을 안한다. 한참 삽질하다 아저씨한테 물어보니 슈리역은 졸라 멀댄다. 걸어서 40분은 걸릴거래나. -_- 차라리 반대쪽으로 20분 정도 걸어내려가면 아사토역이라는 다른 역이 있으니 글로 가라고 했다.



열라 울면서 20분 꼬박 걸어 내려 오니 아사토역이 나왔다. 감격에 겨워 한 컷.
모노레일 타서 노선도를 보니 슈리역과 아사토 역은 5정거장 거리였다. ㅜ.ㅜ

어쨋든 숙소로 돌아와 체크인을 하니 네 시가 다 되었다. 늦게 오는 바람에 도미토리 2층침대의 1층이 다 차버려서 할 수 없이 2층에 자리를 잡았다. 2층이라 짐챙기고 정리하는 것도 거의 서커스 수준이다. 하루만 신세지면 된다는 걸로 위안을 삼고 눈물을 삼키며 침대에 시트를 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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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랭보 | 2006/09/14 19:24 | 오키나와 여행 | 트랙백 | 덧글(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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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대갈마왕 at 2008/12/16 13:41
저는 작년 여름에 갔는데.. 오키나와 역사상 기록적인 폭우가 쏟아졌었더랬습니다. 있는 내내 비와 함께... ㅋㅋ 수리성에서 찍은 사진은 모두 찜질방인듯 수건쓰고 젖은 모습입니다.

차분히 글들 살펴보겠습니다.
12월에는 그래도 춥겠죠?
Commented by 시니시즘 at 2009/01/29 16:45
사진 느낌이 좋네요.. 근데 일본에서 사람들 모습 찍을 때 저는 과감한 용기가 안나오더군요. 사진 내공이 부족해서 그런가ㅠㅠ; 전철 사진이 가슴에 와닿네요. ㅋ
Commented by 랭보 at 2009/01/29 23:53
카메라 고장난 줄도 모르고 찍어서 초점 안 맞고 난리도 아닌데 챙피합니다. 초상권을 생각해서 저렇게 함부로 찍으면 안 되는데 멋도 모르고 찍었는데 지금은 저렇게 못 하겠네요.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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