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과론적인 얘기지만 스쿠터를 빌리지 않고 차를 빌린 것은 탁월한 선택이었다. 오후에 소나기가 한차례 쏟아지기도 했고 짐을 몽땅 챙겨 대충 뒷좌석에 던져넣고 편하게 다닐 수도 있었고 햇볕에 살이 지글지글 구워지는 것도 어느 정도 막아 주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에어컨, 이게 날 살렸다. 정말 이리오모테의 더위는 살인적이었다. 내 생전 그렇게 땀이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경험이란. 꼼짝않고 있으면 좀 괜찮은데 몸을 1m만 움직이면 줄줄줄 무슨 수도꼭지처럼 나와서 이러다 몸이 쪼그라들어 죽는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렌터카도 구했겠다 마음은 벌써 바다에 가 있는데 사실 문제가 하나 남아 있었다. 아직 스노클링 장비 렌탈을 못한 것이다. 속칭 스노클링 3점세트라고 부르는데 마스크, 스노클, 핀(오리발)을 말한다. 웬만하면 집에서 가지고 오려 했는데 도저히 오리발의 부피와 무게를 감당할 수가 없어서 그냥 마스크 하나만 배낭에 구겨넣고 와 버렸다. 할수없이 다시 차를 끌고 나가서 주변 다이빙샵을 기웃거려 봤는데 완전 낭패. 매일 있는 다이빙투어를 나가서 샵마다 사람도 없고 3점세트만 덜렁 빌릴 분위기도 아니었다. 이게 무슨 어이없는 시츄에이션인가 낙심하며 숙소로 돌아오니 스탭이랑 누가 있길래 투덜투덜 하소연이라도 할 겸 얘길 꺼냈는데, 스탭이 선뜻 마스크와 스노클을 빌려준다. 오리발은 뭐 없어도 어느정도는 될거란다. 오리발 없으면 바깥쪽 리프는 무리겠지만 그래도 이게 어딘가!
이제 진짜로 바다로 출발.
목적지는 우에하라항에서 북쪽으로 조금 가면 있는 '호시즈나의 해안[星砂の海岸]'이다. 호시즈나는 우리말로 하자면 별모래인데 이게 쫙 깔려있는 바닷가랜다. 그것뿐 아니라 안전빵으로 스노클링하기에도 짱 좋고 경치도 좋고 하여튼 이리오모테에서 제일 유명한 비치이다. 위 사진처럼 저 앞에 슬슬 그쪽 바다가 보이기 시작하니 아주 안달이 나서 두 손을 싹싹 비비고 싶은 심정이다. 날씨도 제법 좋고.
열라 달려 3분만에 다 왔다. 오면 이렇게 번듯한 주차장이 나온다. 워낙 유명한 바닷가라 주차장도 있고 매점이랑 휴게소 같은 것도 있다.
주차하고서 얼른 챙겨서 이리로 내려간다. 벌써 마음이 급하다.
급해도 기념사진 대충 한 장 찍고. 카메라가 고장난 줄을 이때까지도 모르고 줄창 찍어대던 탓에 사진이 이모냥이다.
어렵게 찾아온 남국의 바다.
바닷가로 내려가는 곳이 저렇게 계단으로 되어 있는데, 열대 식물로 둘러싸인 그곳을 내려가면 조금씩 앞에 바다가 보이기 시작한다. 어린애로 돌아가는 순간이다. 그나마 이건 멀쩡한 카메라로 찍어서 제대로 나왔다.
별모래 해변!
여기도 오기 전에 사진으로 하도 봐서 처음같지 않고 너무 친근했다. 모래가 정말로 일반 모래나 산호가 거의 섞여있지 않고 100% 별모래로 되어 있다. 멀리까지 산호 리프가 발달해 있고 앞에는 작은 섬이 있어서 섬 주위는 파도도 없고 물도 깊지 않아 물고기들 보기에 딱 좋다.
바위와 모래사장, 열대식물, 산호 등이 적당히 어우러진 멋진 곳이다.
마스크랑 스노클을 챙기고 이날을 위해 거금을 들여 장만한 마린케이스에 디지털카메라를 넣고 바다로 간다. 이미 사람들이 열 명 남짓 들어가서 노느라 정신이 없다.
물 속의 평평한 것은 바위가 아니고 산호의 리프이다. 리프가 있는 바다란 게 이런 거구나 처음 실감했다. 바닥이든 어디든 온통 산호 천지라서 맨발로 다니니 발바닥이 졸라 아팠다. 아쿠아슈즈나 마린부츠, 하다못해 오리발이라도 끼지 않으면 다니기가 힘들 정도다. 맨몸으로 다니니 자꾸 몸 어딘가가 따갑기도 하다. 해파리도 없는 것 같은데 산호도 잘못 건드리면 독이 오르는 건지.
뭐 어쨋든 일단 입수.
얕은 곳은 대충 이렇게 되어 있다. 이쪽엔 작은 물고기들이 대부분인데 저 파란 놈들이 제일 많고 저 줄무늬 귀여운 놈들도 좀 있다. 물은 너무 따뜻하다, 근데 바닥의 산호 시체들 때문인지 투명도가 매우 높은 편은 아니다.
조금 더 가서 위 사진에 보이는 좀 큰섬과 작은섬 사이로 가 본다. 그쪽이 명당이다. 고기도 많고 물도 조금 깊어진다.
점점 바닷속 경치가 좋아지기 시작한다. 물고기 종류도 조금씩 많아지고 다양한 모양의 산호들이 점점 많이 보인다.
중간중간 깊은 곳도 있다. 한 3미터 정도? 이런 데는 제대로 물고기를 보려면 잠수를 해야 하는데 아직 스킨다이빙에 익숙하지 않은 데다 오리발도 없어서 좀 애로사항이 있었다. 스노클이 드라이타입이 아니라 물도 꼴깍대며 들이키고. -_- 암튼 들어가 봤다.
장난아니다. 완전히 물 반 고기 반이다.
물고기 종류도 많지만 깊이 2~3미터 정도 되는 곳인데도 팔뚝만한 것들이 득시글거린다. 시커먼 큰 놈이 있었는데 50~60cm 정도는 돼 보이더라. 똑같은 고기라도 수족관에서 보는 것과 직접 들어가서 보는 것은 전혀 다르다. 꽤 박력만점이다. 그리고 물고기 이놈들도 겁대가리를 상실한건지 내 손가락이랑 발가락을 먹이인 줄 알고 먹으려고 툭툭 쪼아대는대 큰 놈들이 그러면 쫌 무섭기도 하고 움찔하게 된다. 꼬추 따먹히는 건 아닌지 살짝 걱정이 되기도 했다. -_-
지금까지 논 곳은 전부 리프의 안쪽(인리프)이고 위 사진에 보이는 저 끝쪽이 아웃리프이다. 아웃리프 쪽은 리프가 끝나는 부분인데, 경사가 급해지고 물살도 세고 파도도 많이 친다. 리프가 있는 바닷가는 모래사장 쪽에 파도가 치는 것이 아니고 저기 리프의 경계인 아웃리프 쪽에서 파도가 치는데, 그래서 아웃리프 쪽은 입수도 쉽지 않고 물살도 빨라 자칫 바다쪽으로 밀려나갈 수도 있다. 그럼 그냥 죽는 거다. -_- 하지만 물속 경치는 훨씬 좋고 물고기도 대물이 많아서 제대로 스킨다이빙을 하려는 사람은 인리프를 생략하고 성큼성큼 걸어서 저 끝까지 간다. 나도 원래는 목숨걸고 갈 생각으로 왔는데 오리발도 없고 이런 장비로 갔다가 뼈도 못 추릴 거 같아서 그냥 꼬리 내렸다. 사실 근처까지 걸어가 봤는데 너무 무서웠다. -_-
얌전히 해변으로 돌아오는 길에 수면 위에서 찍은 사진들.
물이 아주 투명하지는 않다고 얘기하긴 했지만 그래도 보통 바다보다는 훨씬 깨끗하다. 저 파란 물고기들이 마치 공중을 떠다니는 것 같이 보일 정도니까. 케이스에 물방울이 있는지도 모르고 찍어서 좋은 사진 망쳤다. -_-
물론 그냥 이렇게 튜브끼고 얌전하게 놀 수도 있다.
여기 물 속에서 찍은 사진 중에는 이게 제일 마음에 든다. 각도가 잘 맞아서 물 속 경치가 수면에 반사되어 대칭으로 보이는 게 그럴 듯하다.
정신없이 놀다보니 점심시간이 어느새 지나 버렸다. 점심때만 잠깐 영업하는, 이리오모테 섬에선 그래도 맛있다는 식당에 가서 야에야마 소바를 먹을 계획이었는데 틀어져 버렸다. 아직 오키나와 와서 오키나와 소바를 못 먹었다. 있다가 저녁때 다른 식당에 가서 꼭 먹는 것으로 계획을 긴급 수정하고 일단 숙소로 돌아왔다.
점심은 그냥 이걸로 때웠다.
'사타안다기[サ-タ-アンダギ]'라는 오키나와 고유의 과자인데 사실 고유랄 것도 없는 것이, 먹어 보면 너무나도 익숙한 맛이 난다. 어렸을 때 학교 앞 문방구 같은데서 팔던 도나스랑 맛이 거의 유사하다. 정말 한 입 딱 물면 옛날 생각이 나면서 괜히 오키나와가 친숙해지는 느낌이다. 꽤 맛있다.
사타안다기랑 같이 먹은 '시쿼서[シ-クヮサ-]' 쥬스.
시쿼서도 뭐 일단은 오키나와 특산 과일이라서 이 쥬스도 오키나와에서만 파는 것 같다. 근데 그림을 보면 알겠지만 저렇게 귤처럼 생긴 과일의 맛은 뭐 다 비슷하니까 이것도 역시 익숙한 맛이다. 진짜 시쿼서를 사 먹어봤는데 귤보다 작고 저렇게 초록색이면서 맛은 훨씬 시어서 레몬이나 라임하고 비슷하다.
이걸로 일단 점심 물놀이는 마쳤고 조금 쉬었다가 이리오모테 동부 관광을 가기로 했다. 동부 쪽엔 또 이것저것 볼거리가 많아서 은근히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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