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부 관광을 갔다 오니 벌써 저녁식사 시간이 다 되었다. 숙소에서 차려주는 식사가 어떨지 기대되기도 했지만 저녁 먹을 때가 됐다는 건 벌써 이리오모테 섬에서의 여정이 끝나간다는 얘기이기도 해서 좀 서운했다. 정말 오고 싶어서 여기까지 온 건데 하룻밤밖에 있질 못하지 참 아쉽다. 짧은 일정 덕분에 못해본 것도 많다. 특히 배를 타고 근처 작은 섬으로 나가서 하는 스노클링 투어와, 섬 안쪽의 폭포들을 보러 강을 거슬러 올라가는 카약 투어는 이번엔 못 했지만 다음엔 꼭 해 보고 싶다. 내 생각에 충분히 이곳을 만끽하고 큰 아쉬움 없이 돌아갈 수 있으려면 3일 정도는 머물러야 할 것 같다.
어쨋든 그런 이유로 숙소로 들어가 스탭에게 숙박비를 지불하면서 저녁식사시간에 조금 늦을 것 같다고 얘기했다. 이 곳의 바다를 한 곳밖에 들어가보지 못하고 떠난다는 게 못내 아쉬워서 숙소 앞의 비치에 잠시 들어갔다 오려고 마음먹었기 때문이다. 숙소 바로 앞에는 마루마비치라는 바닷가가 있는데 잘 알려져 있진 않지만 의외로 바닷속이 볼만하다는 얘기를 인터넷에서 보았다. 바로 옆의 나카노비치가 좀 더 낫다고 하는데 거기까지 갈 시간 여유는 없어서 그냥 숙소 앞에서 놀다 오기로 했다.
마루마비치는 숙소 바로 앞에 내려가면 있다. 사진의 길을 이렇게 100미터 정도 돌아 들어가면 된다. 나 말고 다른 사람들도 몇 명이서 저녁의 바다를 즐기러 간다. 왼쪽에 보이는 빨간 차 옆의 모퉁이를 돌면 바로 해변이다.
소박하고 아담한 비치이다. 그렇지만 이름모를 열대식물이 해변가를 따라 무성하게 자라고 있어서 확실히 남국의 바다 분위기는 느껴진다.
주섬주섬 장비를 챙기고 바다에 들어갈 준비를 하고 있노라니 아까 같이 걸어 왔던 애들은 저쪽에 가서 자리를 펼치고 뭘 하려고 준비를 한다. 뭐 각자 알아서 노는거니 신경 껐다. 근데 이 때가 만조라는 걸 깜빡 했다. 사진으로 봐도 대충 알 수 있듯이 물이 졸라 불어 있고 해변 쪽으로 많이 들어와 있다. 물결도 제법 많이 일렁인다. 간조 때는 저 앞까지 얕게 되어 있다는데 지금은 어째 스노클링 하기에 좋은 시간은 아닌 것 같다.
그래도 어쨋든 들어갔다.
간조니 만조니 그런 걸 따지고 있을 한가한 처지가 아니다. 만조때라서 확실히 조금만 들어가도 깊어진다. 겨우 이 정도 들어왔는데 벌써 내 키를 넘어선다. 어찌할까 망설이면서 해변 쪽을 보니 아까 애들이 뭔가 하고 있다. 자세히 보니 비치에 무슨 목욕탕 때밀이 침대같은 간이 침대를 갖다 두고서 거기서 마사지 비슷한 걸 시술(?)하고 있다. -_- 저게 뭐하자는 플레이지 라고 생각하며 바라보는데 계속 보다가는 변태 아저씨로 오인될 것 같아 그만 뒀다.
남의 일에 신경 끄고 일단 입수.
이미 날이 좀 어둑어둑해 지려 해서 물 속이 잘 보일지 좀 걱정이 됐는데 물이 깨끗해서 그런지 의외로 꽤 잘 보였다. 1~2미터 정도 잠수한 정도까지는 무난히 잘 보이고 사진도 어느 정도 찍히는 것 같다. 그런데 만조때라 그런지 해변 가까운 곳은 산호가 별로 없다. 수초에 모래밭으로 되어 있는 지형이 많았다. 이 부분은 간조때는 얕은 곳이라 수초 위주이고 좀 더 나가야 산호가 있다. 근데 지금은 만조라서 산호까지 나가기에 너무 멀고 또 깊어서 무서웠다. 바다에 들어와 있는 놈은 나 혼자뿐인데 멀리 나갔다가 떠밀려가면 쥐도새도 모르게 죽을텐데 하는 생각이 들어서 솔직히 너무 무서웠다. 그래서 그냥 멀리 안나가고 놀기로 했다. 다행히 이쪽도 띄엄띄엄 산호초가 있어서 거기엔 고기들도 모여 있고 그랬다.
산호로 된 암초 틈에서 대박을 발견했다.
가시복이다. 그것도 30cm는 족히 돼 보이는 꽤 큰 놈이다. 이놈이 저 암초 구멍 속에 자리를 잡고 은둔해 있다. 나름대로 아늑한 은신처인 것 같았다. 이 정도로 큰 가시복은 처음 본다. 저 놈을 제대로 약올리면 가시를 세우며 배구공만하게 부풀어 오를 텐데 맨몸이고 해서 그렇게까진 못했다. 내가 계속 주변에서 맴돌자 저놈도 나를 의식하면서 쳐다보고 하는데, 자기가 있는 곳이 안전하다는 걸 아는지 겁도 안 먹고 손을 내밀면 뒤로 조금만 들어가 숨었다가 곧 다시 나오고 한다.
합죽이같은 입에 툭 튀어나온 눈을 하고 쳐다보는 모습이 너무 귀엽다.
제대로 놀진 못했지만 그래도 귀여운 친구를 발견하여 만족을 하고 적당히 놀다 나왔다. 마사지하던 애들은 아직도 계속 시술중인데 난 저녁밥을 먹어야 하기 때문에 그만 숙소로 돌아갔다. 샤워를 하고 식당으로 가서 스탭한테 늦어서 미안하다고 애교 한 번 날려주고 밥달라고 보채니 밥이 나왔다. -_-
소박하지만 상당히 맛있었던 저녁밥.
음식 솜씨가 꽤 좋다. 메뉴도 쓸만하다. 정체불명의 물고기 회에, 중화풍 소스의 고기+야채볶음, 정체불명의 나물, 아당 줄기를 채썰어 무친 거, 김치(ㅋㅋㅋ), 국, 이런 구성이다. 특히 국이 진짜 환상적으로 맛있다. 닭가슴살과 무를 넣고 끓인 건데, 푹 끓여서 물렁하게 된 무가 정말 짱이고 덕분에 국물도 신음이 절로 나올 정도로 시원하다. 내가 탕 종류의 이런 국물요리의 맛을 감정하는 데에는 나름대로 일가견이 있다고 자부하는 사람인데, 이런 뜻밖의 시간과 장소에서 기습적으로 이 정도 수준의 국물을 먹게 되어 약간 쇼크였다.
저 정체불명의 나물은 나중에 알아본 결과 헤치마[へちま] 또는 나베라[ナ-ベ-ラ-]라고 부르는 나이든 오이 비슷한 식물로 만든 거였다. 고야처럼 더운 지방에서 기르는 작물로 일본에서는 주로 남쪽 오키나와 지방의 특산인 것 같다. 근데 사실 흙냄새가 이상하게 많이 나서 먹다가 조금 남겼다. 무슨 흙퍼다 넣고 삶았는지... -_-
밥먹고 방으로 돌아와서 짐정리로 시간을 때우며 좀 소화가 되기를 기다렸다.
방은 이렇게 생겼다. 다다미를 깐 목조 건물인데 민숙 분위기 물씬 나지만 깨끗하고 이불도 보송보송했다. 그리고 무려 이렇게 선풍기도 있다. 방에 에어컨도 있지만 100엔 넣어야 돌아가는 코인 쿨러라서 선풍기가 있다는 건 정말 대단한 축복이시다. 잠깐 더울 때는 선풍기 바람으로 버틸 수 있고 젖은 옷을 말릴 때에도 요긴하다. 하지만 밤에 잘 때 선풍기만으로 자는 건 솔직히 무리일 듯 싶다. 있다가 나가서 100엔짜리 잔돈 좀 만들어 갖고 들어와야 할 것 같다.
밥을 먹고 빨리 소화가 되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그 이유는 식당에 가서 소바를 먹어보기 위해서이다. 아직 오키나와에 와서 오키나와 소바를 못먹었기 때문에 오늘 저녁에는 어떻게든 한 그릇 먹어야 겠다는 생각이다. 일단 겸사겸사 밖으로 나왔다.
미리 조사해 둔 식당으로 갔다. 신파치식당[新八食堂].
야에야마소바와 소키소바를 전문으로 하는 식당이라고 한다.
들어가 보면 평범한 동네 식당 분위기다. 뭘 시킬까 메뉴판을 보며 고민하는데 메뉴에 야에야마소바가 없고 그냥 소바다. -_- 그게 그건지 혼동이 오기 시작했다. 벽에는 추천메뉴로 볼륨만점의 야채소키소바가 적혀있는데, 이미 저녁도 먹었고 그건 너무 거할 거 같아 그냥 소키소바나 먹기로 했다.
소키소바.
오키나와쪽 소바는 보통의 소바와는 다르게 메밀이 아닌 그냥 밀가루로 면을 만들며 국물은 소금으로 간을 한다. 소키라는 말이 붙으면 돼지의 등갈비 부위를 양념해 조리한 걸 얹어서 나온다. 그래서 나온 게 사진과 같은 물건인데... 아우 이거 내 입맛엔 영 별로다. 무엇보다 이 밀가루로 만든 면이 정말 내 취향과는 맞지가 않다. 우동이나 소면 면발과는 전혀 다르다. 굉장히 밀도가 높은 반죽이고 푹 익히지 않아 생반죽을 씹는 느낌이 들면서 밀가루 냄새가 난다. 솔직히 졸라 실망했다. 이건 아니잖아... -_- 사진으로 상상한 맛과 실제의 맛이 상당히 달랐다. 국물은 소금 베이스로 꽤 맛있었다. 결국 국물만 쪽쪽 짜먹고 면은 반정도 남겼다.
여기가 제대로 못하는 곳일지도 모른다. 내일 다케토미랑 이시가키의 다른 곳에서 다시 판단해 줄 예정이다.
밖으로 나와 이제 드라이브나 할까 생각하며 배를 두드리고 있는데 도로에 이상한게 자꾸 왔다갔다 한다. 가까이 가서 보니 게다. 게가 작은 것도 아니고 손바닥만하다. 그런 놈들이 꽤 많다. 여긴 마을인데도 겁대가리를 상실하고 마구 도로를 횡단중이다. 한번 잡아보려고 하니 제법 굵은 집게를 들고 시위를 한다. 어찌어찌 잡아 들었는데 으윽~ 뭔가 손에 뭉클끈적한게 잔뜩 묻는다. 게거품인가 하고 손을 보니 그게 아니라 알이다. 게들이 알을 품고 바다로 가는 건지 숲으로 가는 건지 암튼 이동하고 있었던 거다.
게들이 배에 알을 품고 옆으로 기어가고 있다.
그냥 드라이브나 하러 나섰다. 못가본 서쪽방향으로 가기로 하고 쭈욱 내달렸다. 차가 거의 없고 가로등이나 건물도 없는 깜깜한 길을 혼자 달린다. 오른 쪽은 바로 바다고 왼쪽은 숲이다. 조금 가니 큰 강이 나온다. 다리를 건너가며 옆으로 보이는 강의 하구 모습이 오싹하리만치 무섭다. 불빛이라곤 내 차의 전조등뿐이지만 보름달이 떠 있어 먼 곳까지 어슴푸레 보인다. 시커먼 물과 밀림을 보고 있노라니 마치 나를 삼켜버리려는 것처럼 보여서 나는 자꾸 가속 페달을 밟았다.
서쪽 도로 끝까지 갔다. 서쪽 끝은 시로하마항[白浜港]이다. 이곳 너머엔 배를 타야만 갈 수 있는 마을이 하나 더 있다고 한다. 역시 항구에도 아무도 없고 무섭다. 담배 한대 피우고 얼른 차를 돌렸다.
밤에 드라이브를 하고 있으면 이상한 소리가 난다. 수시로 빠직빠직 하는 소리가 차 밑에서 나는데 처음엔 그게 뭔소린가 했다. 그런게 알고 보니 아까 그놈들이었다. 게다. 게들이 도로를 건너가다가 바퀴에 깔려 껍질이 으깨지며 비명횡사하시는 소리였던 거다. -_- 가끔씩은 거북이도 있다. 게나 거북이나 작은 놈들이 아니라 제법 크기가 되는 놈들이라 소리가 정말 요란해서 밟을 때마다 느낌이 진짜 이상하고 자연적으로 표정이 울상이 된다. 드라이브는 더 이상 못하겠어서 그만 돌아왔다.
수퍼에서 맥주와 먹을거를 사서 들어가려고 돌아왔는데 글쎄 수퍼가 문 닫았다. -_- 완전 망했다. 9시를 갓 넘었을 뿐인데 벌써 문을 닫으면 어쩌라고. 할 수 없이 자판기에서 음료수나 뽑아가지고 들어왔다.
자판기에서 뽑은 산삥차.
오키나와 한정품인 이놈을 나하에서부터 여러 병 마셨는데 솔직히 아무리 먹어봐도 맛이 그냥 쟈스민 차다. 뭐 이래 하면서 병을 살펴보다가 뒤에 적힌 걸 보니 '품명:쟈스민차'. 뭐여 이게. 오키나와 방언으로 쟈스민이 산삥이여? 이건 사기다. -_-
적당히 쉬다가 자려고 누웠다. 오늘 밤은 이놈 신세를 져야 한다. 100엔짜리를 5개 머리맡에 두고 만반의 준비를 갖췄다. 일단 하나를 넣고 에어컨을 트니 아~ 열라 시원하다. 일단 자고.
다음날 아침.
피곤했는지 좀 늦잠을 잤다. 깨어보니 벌써 8시다. 사실 어제 자는데 4시에 너무 더워서 깼다. 100엔으로 자는 건 무리였다. 100엔 더 넣고 4시에 다시 자서 8시에 기상했다. 9시까지 렌터카를 반납하고 9시20분 배를 타고 이시가키로 떠나야 한다. 할 일이 많은데 시간이 촉박해서 열라게 씻고 아침먹으러 갔다.
아침식사는 평범한 보통의 메뉴였다.
계란프라이, 베이컨, 아스파라거스에다 낫토와 김, 생선구이가 나왔다. 생선은 역시 어제와 같이 정체불명의 고기다. 아무리 봐도 여기 바다에서 대충 아무거나 잡아서 쓰는 것 같다. -_- 그래도 양념이 맛있어서 꽤 먹을 만하다. 밥먹고 짐챙겨서 대충 인사하고 나왔다. 아침에 별모래 해변에 가서 별모래를 채취해 와야 하기 때문에 서둘러야 한다.
여전히 그림같은 별모래 해변.
아침이라 그런지 사람도 없고 한적하니 좋다. 오늘은 날씨도 좋아서 더 좋아 보인다. 이 시간은 아직 밀물일 때라 어제 점심에 놀 때보다 물이 많이 밀려와 있다. 어제는 드러나 보이던 산호들도 물에 잠겨 있다.
언제 다시 오게 될지 몰라 찬찬히 눈에 새겨 두고 아쉬워하며 돌아섰다. 다시 올 때까지 잘 있기를.
급히 별모래를 채취한 후에 돌아와 차를 반납했다. 반납할 때에는 기름을 가득 채워서 돌여줘야 한다. 주유소에 들어가 외쳤다. "만땅 오네가이시마스~" 만땅은 역시 일본어였다. -_- 총 150km 정도 달렸는데 10리터 조금 넘게 넣었다. 1600엔 정도. 기름값이 1515엔/L로 우리나라보다 싸다. 이것도 원래 이리오모테는 낙도라서 기름값이 비싼 편이라 하니 우리나라 기름값이 얼마나 비싼 건지...
페리를 타고 이리오모테를 출발했다.
짧은 시간이라 아쉬우면서 알찼던 하루였다. 다음에 꼭 다시 올거라 생각하며 다음 목적지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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