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9시 20분.
이리오모테를 떠나 페리를 타고 다시 이시가키의 리토산바시로 간다. 어제 이놈의 페리를 타다가 눈이 뒤집히는 경험을 했는지라 이번에는 철저한 대비와 마음의 준비를 하고 배에 올랐다. 일단 배에 타기 전에 익숙하지 않은 음식(ex. 루트비어)은 먹지 않는다. 배를 타서는 가능한 한 뒤에 않아서 TV나 글자를 보지 않고 쓸데 없는 생각을 하지 않는 채로 무념무상의 상태로 있는다. 말 그대로 인간 목석이 되어야 한다. -_- 이런 대비 탓인지 돌아올 때는 무사히 별 탈 없이 올 수 있었다. 어젠 정말 루트비어가 문제였나...
이시가키로 돌아왔지만 바로 또 배를 타고 떠나야 한다. 오늘 오전부터 한나절 정도는 바로 옆에 있는 다케토미 섬에서 보내기로 계획했기 때문이다. 이시가키를 둘러보는 건 오늘 오후의 일이 될 것이다. 일단 다케토미행 10시 30분 페리의 표를 사고선 가까이에 있는 렌트바이크 가게에 한번 가 봤다. 있다가 이시가키에 돌아와서는 스쿠터를 렌탈해서 타고 갈 곳이 있기 때문이다. 인터넷 상에서 알아본 이 가게는 평은 좋은데 예약은 받지 않아서, 스쿠터가 여유가 있는지 확인해 보고 여유가 없을 것 같으면 미리 빌려놓으려고 간 거였다. 근데 대충 상황을 보니 그럴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가게는 쬐끄만데 바이크는 꽤 많다. 50cc 스쿠터가 20대 정도? 리토산바시 바로 뒤편에 있는 이 가게의 이름은
'난고쿠야[南国屋]'다.
다케토미로 출발했다.
여행기 1편의 지도를 보면 알 수 있듯이 다케토미는 이시가키 바로 옆이기 때문에 페리를 타고 10분이면 간다. 배멀미 걱정을 할 필요도 없이 완전 여유다. 아, 도착하기 5분쯤 전부터 배가 지나가는 주위의 바다색이 정말 예쁘다.
간단히 도착.
날씨도 좋아서 아주 기분 짱이다. 이제 자전거만 빌리면 이이상 퍼펙트할 수가 없다. 아무 정보 없이 그냥 가면 자전거 빌릴 수 있다는 얘기만 보고 와가지고, 이젠 어떡해야 하나 두리번 눈치를 보니 저 앞에 무슨 봉고차들이 쭉 늘어서 있다. 대충 눈치를 보니 섬 안의 가게나 민숙들이 손님 끌러 나와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아무 생각 없이 제일 처음에 있는 자전거 렌탈 봉고차에 올라 탔다. 이름은 '렌터사이클다케토미[レンタサイクル竹富]'다.
그냥 고른 건데 재수가 좀 좋은가 보다. 항구 반대편에 비치가 있는데 가게도 그 근처란다. 자전거를 빌린 다음 비치부터 먼저 가기로 했다. 자전거 렌탈은 1시간에 300엔으로 5시간 이상은 당일 한정해서 1500엔이다. 쬐끄만 섬이라서 자전거에 자물쇠 같은거 채우지도 않는다. 가게 이름 써 놓으면 그걸로 충분하다고. 기어 같은거 없는 그냥 자전거인데 생각보다 잘나가고 앞에 배낭 싣는 바구니도 있어서 진짜 편하다. 바구니 달린 자전거는 평소라면 절대 사절인데 여행지에서선 그런 거 따지는 게 오히려 찌질한 거다. 배낭을 바구니에 넣고 비치를 향해 신나게 달린다.
다케토미 섬의 비치라면 당연히 '콘도이비치[コンドイビ-チ]'다. 정말 이 섬에서 뿐만 하니라 야에야마 제도를 통털어서 제일 유명한 비치라고 해야 하나... 영화나 드라마 배경으로도 엄청 나오고 정말 그림과 같은 경관으로 이름난 곳이다. 자전거 가게에서 300미터 정도 떨어져 있어서 금방 도착했다.
다 온 것 같다. 나무들 사이로 난 입구를 통해 바다가 살짝 보인다.
진짜 다 왔다. 바로 저기다. 어제 이리오모테에서처럼 또 마음이 급해진다.
콘도이 비치!
으아, 진짜 이렇게 넓은 비치는 처음 봤다. 생전 이런 곳은 보도못했다. 하여튼 짱 근사하다. 뭐라 말로 설명하기가 부족한 느낌이다.
백사장과 바다가 졸라 얕고 넓게 퍼져 있고, 엷은 에메랄드빛의 바닷물은 빠르게 북에서 남으로 물결지며 흐르고 있어서 그 분위기가 참 묘하다. 정말 영화 속에서나 나올 법한 광경이 바로 눈 앞에 있으니 마냥 신기할 따름이다. 마침 썰물때라 사진에서 보듯이 바다 한가운데 모래로 된 둔덕이 모습을 드러내어 사진으로 많이 보던 그런 모습이 되었다.
열라 준비하고 입수.
근데 아쿠아슈즈가 없어서 맨발이라 정말 곤란하다. 들어가다가 기어코 발을 다쳤다. 우리나라 비치와 달리 남국의 비치는 산호가 있어서 맨발은 꽤 곤란하다. 이곳은 그나마 모래로 된 백사장 위주지만 그래도 산호 조각이 섞여있다. 생전 처음 와보는 거라 시행착오를 할 수밖에.
바다 가운데 섬까지 가는 도중의 얕은 물 밑에는 산호보단 모래 위주고 해삼이 엄청 많았다. 가끔 저렇게 거대한 불가사리도 있다. 저건 손바닥 두 배 정도의 크기였다. 걸어가면서 모르고 해삼을 밟으면 느낌이 열라 이상하다. 발바닥에 느껴지는 뭉클한 감촉. -_- 마음이 급해서 서두르다가 마스크를 깜박 물에서 놓았는데 물살이 빨라 금방 떠내려가 사라져 버렸다. ㅜ.ㅜ
무릎 정도 오는 바다를 건너 앞에 있는 모래섬으로 간다.
모래 섬에 와서 보니 새로운 세상이다.
뭐라 말로 설명하기가 부족하고 그저 멍하니 주위를 감상할 뿐이다. 사진을 좀 잘 찍어보려 했는데 여기서는 아무래도 좀 더 광각 렌즈가 필요하다. 이 광경을 담기에는 카메라의 화면이 너무나 좁다. 파노라마 사진을 찍을 수 있으면 짱일 것 같다는 생각도 들고.
때마침 해도 났다. 바다에 누운 채로 둥둥 떠서 한참동안 하늘을 보고 있노라니, 눈에 보이는 광경과 몸으로 느껴지는 감각이 평상시와 달리 너무나도 이질적이어서 기분이 좋으면서도 참 생소했다. 이런 것도 여행 하는 맛인가...
한참을 이렇게 정신을 빼앗긴 채로 놀다 보니 나도 모르는 사이에 해변으로부터 아주 멀리까지 나오게 되었다. 어느새 둘러 보니 바닷가에서 몇백 미터는 떨어진 곳까지 나와 있다. 슬슬 돌아갈까 생각하고 일단 해변으로 나왔다.
바다에서 나와 샤워를 하고, 수영복이랑 수건 등을 저기 돌담에 널어 놓고선 담배 한 대 물며 쉬었다. 햇볕이 따끈따끈해서 수건도 금방 마를 것 같다. 근데 그렇게 쉬고 있던 와중에 저기 앞에 어떤 커플을 발견했으니...
처음엔 이쁘장한 여자애가 있어서 그냥 눈이 갔던 것 같다. -_- 아저씨짓좀 안해야 하는데 본능을 이기기는 참으로 어렵다. 근데 이상한 것이 여자의 화장이 아무리 봐도 정말 완벽했다. 분명히 막 바다에 들어갔다 나와서 씻고 온 상태인데, 샤워장도 무슨 화장을 할만한 번듯한 곳도 아니었는데... 역시 여자는 대단하다.
이거는 그냥 쉬면서 비치 주위를 찍은 것이다. 근데 왜 저 여자애는 자꾸 잡혀서 구도를 망치고 있는 건지. -_-
저 뒤에 보니 빙수를 파는 차가 보인다. 대나무 발을 드리우고 빨간 글씨로 氷자를 써 붙여 놓은 차의 모습이 이곳 바닷가와 참 잘 어우러진다는 생각이 들었다.
덥기도 하고 가게도 예쁘길래 빙수 하나 사먹었다.
시원하니 참 좋다. 빙수 먹고서 더 늦기 전에 대충 짐 챙겨 나왔다. 아무리 좋아도 마냥 있을 수도 없고 다른 구경도 해야 하니까. 일단 점심시간이 되었으니 밥이나 먹으러 가기로 했다. 메뉴는 어제 실패했던 소바다.
콘도이비치와 가까운 곳에 여기 다케토미 섬에서 가장 알려진 음식점
'타케노코[竹の子]'가 있다.
소바로 이름깨나 있는 곳이다. 도착하니 역시 유명 가게라서 대기판에 이름을 적어 놓고 기다리란다. 한 15분 쯤 기다린 후 안으로 들어갔다. 대기할 때 내 뒤에 좀 어리버리해 보이는 여자 한 명이 있었는데, 우연인지 당연한 건지 카운터 내 옆에 앉게 되었다. 근데 무슨 주문하는데 말을 더듬는다. 야에야마소바를 말하는데 그걸 버벅이는 거다. 마치 처음 해보는 말을 하듯이. 순간, 이 사람 한국사람 아냐? 하는 생각이 팍 들었다. 그렇게 생각하고 힐끗 보니 어째 차림새도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소바도 소바지만 일단은 맥주 한 잔이다.
아 정말 이렇게 더운 날에는 이거 말고 다른 건 다 필요없다. 특히 이상하게 일본 생맥주가 우리나라 생맥주보다 맛있는 것 같다. 쪽발이꺼 인정하는 게 분하지만 이건 어쩔 수 없다. 오키나와 지방엔 고유의 맥주 브랜드 '오리온'이 있는데 이게 꽤 맛있다. 구수한 맛이랄까, 옛날 생각나는 맛이다.
밥은 먹어야 하니 야에야마소바도 시켰다.
야에야마소바는......아우......왜이런 거냐. 아 증말 오키나와 소바는 면이 열라 아니다. 어제 거기가 이상한 게 아니고 오키나와쪽 소바의 면은 다 이런 건가 보다. 면이 밀가루 반죽 썰어서 삶은 건데 그 덜 삶은 식감... 참 적응하기 힘들다. 소금으로 간을 한 국물은 꽤 맛있었다. 이쪽 소바들은 면이 아주 비호감이다.
그래도 어찌어찌 그릇을 비우고 나왔다. 아, 아까 카운터 옆의 어리버리 여자애가 궁금해서 나오면서 대기자 명단을 봤는데 이름이 '모치즈키'였다. -_- 뭐야 일본인이잖아. 근데 혼자서 좀 주눅 든 채 쩔쩔매며 여행다니는 그런 스타일의 여자애였다. 실연여행이라도 온 건가...
밥도 먹고 했으니 마을 구경을 하기로 했다. 여기 다케토미의 마을은 전형적인 오키나와 전통의 모습으로 유명하다. 빨간 기와를 올린 지붕에 돌담길, 그리고 군데군데 피어있는 꽃들. 사람들 사는 마을이긴 한데 전략적으로 지방자치단체에서 지원을 해 주면서 옛 모습을 유지하게 하는 그런 구조인 것 같았다. 어쨋든 오키나와 본섬에서는 '류큐무라'같은 일종의 민속촌을 가야 볼 수 있는 모습이 여기서는 그냥 보통 마을의 풍경이다. 그리고 그런 모습을 더 잘 보라고 만들어 놓은 게 있었으니,
이런 전망대를 세워 놓았다.
모습은 저래 보여도 어엿한 전망대다. '나고미의 탑[なごみの塔]이라 이름붙여진 저 전망대에 올라가서 사진 한 장 박으려고 사람들이 줄을 서 있다. 줄까지 선다는 게 좀 그렇지만 여기까지 와서 저기 한 번 안 올라가 보고 가는 것도 우스운지라 나도 조용히 가서 줄을 섰다.
뒤에 이런 계단을 타고 올라가는 건데 계단이 졸라 가파르다. 올라가는 사람들마다 무섭다고 난리다. 특히 내려올 때가 더 심한데, 사실 저 사진도 지금 생각해 보니 올라가는 중이었는지 내려가는 중이었는지 잘 모르겠다. 왜냐하면 내려갈 때도 저렇게 해서 뒤로 빌빌대며 내려가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올라가 보니 이렇다. -_-
꽤 가파르긴 하다. 근데 솔직히 내 생각에는 무서운 것보다 저기서 미끌하면 줄 선 사람들 앞에서 개쪽먹는 게 더 크다고 본다. -_-
올라가 본 경치는 대충 이렇다. 해가 안나서 좋은 풍경은 안나왔다. 쫌 서운했다.
다시 마을을 달린다. 포장도로가 아니고 모래가 깔린 길이라 미끄럽지만 그게 또 참 운치가 있다. 어느새 해가 또 났다. 이 동네는 정말 날씨가 하루에도 몇 번씩 바뀐다.
다케토미 우편국.
우체국도 제법 운치가 있다. 마을의 다른 건물이랑 어울리기도 하고. 아마 그냥 가정집 개조해서 우편국으로 한 것 같다. 최근에 본 일본 영화중에 '니라이카나이로부터 온 편지'라는 영화가 있는데, 이 다케토미섬이 배경이고 주인공의 할아버지가 여기 우편국을 맡고 있다. 영화에서의 우편국은 완전 가정집의 모습이었는데 실제와는 좀 다른 걸 보면 아마 세트였나 보다.
이거이 또 다케토미섬의 명물 물소차 관광이다.
타고 가는 사람 입장에서야 제법 운치 좀 있겠지만 나는 안 타서 그런지 왜그리 물소가 딱해보이던지. 어제 이리오모테섬에서 본 그 물소차는 이거에 비하면 양반이다. 여긴 거의 소형버스 수준으로 사람을 태우고 다닌다. 에구 물소 얼마나 힘들꼬. 근데 이 물소들이 참 영리한 게, 저 좁은 길에 저렇게 버스만큼 긴 마차를 끌고 다니면서 알아서 운전을 진짜 잘한다. 특히 코너를 돌 때, 긴 차 운전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머리를 아주 바깥쪽으로 틀어서 돌아야지 그렇지 않으면 옆구리가 코너 모서리에 긁히게 되는데, 이 물소놈이 그걸 정확히 알아서 바깥으로 한껏 크게 해서 도는데 정말 신기했다.
하지만 그거야 그거고 물소가 불쌍한 건 사실이다. 마차 크기라도 좀 줄였으면 좋겠다.
동네 구경을 대충 하고, 또 다른 해변을 가보기로 했다. 이 섬에도 별모래 해변이 있다. 별모래가 뭐 지금은 거의 보기 힘들다지만 그래도 어쨋든 별모래 해변이란다. 그리고 거기와 붙어 있는 카이지 비치라는 곳이 있는데 콘도이비치와는 사뭇 다르게 한적하고 좋은 곳이라고 하기에 가 보기로 했다.
카이지 비치 가는 길.
마을을 벗어나면 이런 길이 이어진다. 비록 바다는 보이지 않지만 이 길을 따라 계속 가고 있노라면 또 다른 느낌으로 낙도 분위기가 물씬 난다. 시간이 멈춘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난 이런 길이 좋다.
카이지 비치 입구에 왔다. 저기 보면 무슨 평상 같은 게 있어서 뭔가 하고 가까이 가 봤다.
이게 뭐야. -_- 뜬금없이 고양이들이 잔뜩 퍼질러 누워 있다.
애들이 아주 세상만사 다 귀찮아 죽겠다는 표정을 하고 드러누워 꼼짝을 않는다. 가서 건드려도 한번 쓰윽 쳐다보고선 그냥 그런가부다 하더니 바로 다시 잔다. 애들 정말 상팔자다.
카이지 비치는 특유의 분위기가 있었다.
앞의 콘도이 비치가 가족끼리 와서 화기애애하게 즐기기 좋은 이미지라면, 이곳은 혼자서 한가롭게 시간이 흘러가는 것을 온몸으로 느끼는 그런 이미지랄까. 여유가 좀 더 있어서 저기 나무 밑에 대충 앉아서 책이라도 읽으며 한나절 정도 소일하면 좋을텐데 하는 생각을 했다.
마냥 있고 싶지만 다시 항구로 돌아가야 한다.
아쉽지만 돌아가는 길을 밟는 페달이 힘 없진 않다. 아마도 이런 길을 갈 수 있기 때문이겠지.
자전거를 반납하고 다케토미항으로 돌아왔다.
페리를 기다리다가 한 컷 찍었는데, 활짝 웃고 있는 사진은 아니지만 이 사진이 마음에 든다. 수건을 두른 채 붉게 그을리고 달아오른 저 모습을 보고 있으면, 얼마 지나지 않았지만 그때의 느낌이 다시 떠오르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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