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날 밤을 보내면서 좀 생각한 것이 있다. 별건 아니고 여행지에서의 숙소 문제에 관한 거였는데, 혼자 하는 여행에서 호텔에 묵는 것이 얼마나 효용이 있는 것인지에 대해서 좀 의구심이 생겼기 때문이다. 호텔의 장점이라면 기본적으로 프라이버시가 보장되는 공간을 확보할 수 있다는 점일 텐데 문제는 이게 마냥 좋을 때만 있는 게 아니라는 데 있다. 물론 하루의 피곤을 풀거나 편안한 마음으로 일과를 정리하고 싶거나 할 때는 참 편하고, 아니면 자아를 찾아 떠나온 거라든가 고독을 씹는 여행이 테마라든가 실연여행이라든가 그렇다면 역시 조용히 혼자 생각하기 위해 좋을 것 같다. 하지만 그런 거 없이 그냥 여행 온 거라면 혼자서 호텔방에 묵는 것이 고역일 때가 내 경험에는 많았다. 프라이버시가 보장된다는 건 간단히 뒤집어 보면 외부와 단절되고 고립되었다는 뜻이다. 저녁이 지나 어둠이 깔린 낯선 여행지에서 total stranger인 내가 할 수 있는 것에는 한계가 많았다. 한마디로 무지하게 외롭다고 느끼게 된다는 거다. 참 이상한 게 집에서는 매일 혼자서 밤에 시간 때우고 별 생각 없이 잘 지내면서도 여행지에선 단 며칠 밤만 혼자 호텔방에 틀어박혀 있어도 유난히 기분이 이상하고 쉽게 우울해 진다. 그래서 뭔가 해볼까 하고 밖에 나가 술집이라도 들어가서 한 잔 마시게 되면 오히려 더 겉잡을 수 없이 고독의 물결이 밀려온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고독의 파도타기를 하러 여행을 온 거라면 그 분위기에 마음껏 몸을 맡기면 되겠지만 그냥 보통 여행을 하는 것이라면 하루하루가 연결이 안 되고 끊어지는 느낌도 들고 좀 곤란하다. 이번 여행에서는 마지막 날에 피곤을 풀 목적으로 호텔을 골라 거기서 목욕도 하고 잘 쉬긴 했지만 한켠으로는 첫날 묵었던 게스트하우스 생각이 많이 났던 것이 사실이다. 대부분 두 번 다시 만날 일도 없을 스쳐가는 사람들과의 별스럽지 않은 대화와 소통이라 할 수도 있겠지만 일상이 아닌 여행이기 때문에 그 자체로 충분히 의미 있는 시간이고 경험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치만 또 게스트하우스는 너무 잠자리가 편치 않을 때가 많으니, 좀 생각해 본 결과 게스트하우스에 묵으면서 며칠에 한 번 정도는 호텔에서 피로를 푸는 게 좋을 것 같다는 내 나름대로의 결론을 내렸다.
아무튼,
이제 여행 마지막 날이다. 귀국편 비행기는 나하에서 12:40에 출발하니 오전에 시간이 좀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문제는 지금 여긴 나하가 아니라 이시가키라는 점이다. 예약해 둔 아침 비행기를 못타면 귀국이고 뭐고 골치아프게 되기 때문에 또 엄청 일찍 일어났다. 7시에 기상해서 후딱후딱 준비하고 방을 나섰다. 호텔 1층에 빵과 샐러드, 음료 등의 간단한 조식코너가 있었지만 공항에 가능한 한 일찍 도착하기 위해서 대충 주스나 한 잔 마시고 출발했다. 공항이 가까우니 8:10 비행기를 타는데 7:20에 나오는 만행을 저질러도 느긋하기만 하다.
또 여기에 왔다. 호텔 앞에는 좀 휑해서 택시가 별로 없어 5분 정도 걸어서 리토산바시까지 왔다. 야에야마의 여행은 역시 이곳 리토산바시에서 시작해서 리토산바시에서 끝나는 구나.
마지막으로 한 번 스윽 둘러본 다음 택시를 탔다.
어쩐지 조만간 다시 올 곳이라는 생각이 들어 아쉽지는 않았다. 공항으로 갈 때는 올 때보다 조금 돌기 때문에 택시요금이 60엔 더 나와 870엔 들었다.
밤에 비가 좀 왔기 때문에 길은 아직 젖어 있다.
10분만에 금방 공항에 도착했다. 사실 공항이라고 해봐야 시골 시외버스 정류장만한 건물이다. 사진에서 앞에 보이는 게 ANA 건물인데 이건 그나마 새로 지은 거라 깨끗하다.
JTA 건물은 이렇게 낡았다.
낡았다고 해도 이쪽이 좋다. 정감있기도 하고 이 건물이 원래 공항 건물이었기 때문에 매점이나 기념품 가게도 다 이쪽에 있다. ANA쪽 건물은 깨끗하다 못해 썰렁한 정도랄까. 1분만에 항공권 발권하고 몇 분 있는 여유시간동안 가게를 좀 구경했다. 이것저것 동네수퍼같이 특산 먹거리 같은 걸 팔고 있는 걸 보니 공항이 아니고 영락없이 버스터미널이다. 기념품 가게에서 야마네코 인형이 귀엽길래 하나 샀다.
저게 나하로 떠날 비행기이다.
탑승 수속 후에 이렇게 직접 걸어가서 비행기에 오른다. 공항이 작아서 그런거지만 이것도 이시가키 공항의 매력 중 하나다. 별것도 아닌데 참 낭만적이다.
나하까지는 50분 정도 걸린다. 당연히 기내식 같은 건 나오지 않는다. 지난 번 이시가키로 올 때는 사탕 몇 개 쥐어주고 말았는데 그래도 이번엔 주스가 나왔다. 주스를 홀짝거리며 창을 내다 보고 있노라니 나하로 올수록 날씨가 점점 맑아진다.
나하에 도착하니 날씨가 너무 좋았다. 햇빛이 잘 들어서 따끈따끈하다. 귀국편의 탑승수속까지는 두 시간 정도 남아 있어서 시내 구경을 하고 물건도 좀 사기로 했다. 그리고 못 먹었던 타코라이스와 젠자이도 마지막으로 시도해 보고. 200엔짜리 코인로커에 짐을 넣고 가뿐하게 모노레일을 탔다.
공항에서 시내로 가는 길은 이렇게 주위에 들판과 나무들이 깔끔하게 어울어져 있다. 국제거리에 갈 꺼니까 현청앞 역에서 내리면 된다. 한 10분 쯤 걸리나.
모노레일을 타고 가다가 저걸 발견했다.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오키나와의 명소(?)인 '아시아 식당'이다. 얼마 전에 TV를 보니 VJ특공대에서도 나오더라. 나오는 음식 자체는 별볼일없는데 저 건물 하나로 장사해서 먹고 사는 것 같다. 이렇게 사진 한 장 박았으면 됐지 실제로 가볼 생각은 눈꼽만큼도 들지 않았다. 내가 보기엔 좀 얼치기 식당 같아서.
다시 온 국제거리는 훨씬 화창하다.
시간은 별로 없는데 할 게 많다. 타코라이스랑 젠자이 먹어야 되고 사타안다기랑 친스코도 사야 한다. 부지런히 길을 건너서 앞에 보이는 오키나와야에 갔다. 미리 알아간 맛있다는 친스코 가게의 제품을 오키나와야에서도 팔고 있었다. '아라가키[新垣]'라는 상표인데 오키나와야에서 그냥 사면 된다. 일단 봐 두고서 사타안다기부터 사러 갔다. 유명한 가게라서 금방 매진된다고 들었기 때문이다.
꽤 먼 거리라서 여기가 오키나와인 줄도 깜빡 잊고 막 걸었다. 30초쯤 지나니 땀이 줄줄 흐르고 완전히 온 옴이 땀으로 범벅이 되었다. 으아~ 정말 죽을 지경이다. 마침 수건도 없이 그냥 와서 흘러내리는 땀을 닦을 것도 없고 완전 사우나 들어 앉은 꼴이 돼 버렸다. 오전이고 그렇게 더운 날이 아니었는데 나만 혼자 땀범벅이라 쪽팔렸다.
한참을 걸어가서 마키시 공설시장으로 갔다. 여기는 국제거리와 붙어 있는 시장통이다. 일본 시장/상점가는 다 이런 모양새로 되어 있다. 지붕이 있는 기다란 통로 형식으로. 근데 우리나라 재래시장들도 요즘보면 정비한답시고 요모양 고대로 베껴서 새로 공사를 하더라. 참 그게 뭐하는 건지 싶다.
지나가다 보니 과일가게가 있는데 색깔이 꽤 알록달록하니 보기 좋다. 용과, 스타프루츠, 시쿼서 등등 이상한 과일들이 제법 있다. 파인애플이랑 바나나야 뭐 우리나라 마트에도 널리고 널린 거라 별 감흥은 없고 가격도 여기가 싼 것도 아니다.
시장통 옆에 보면 건물 안으로 들어가는 입구가 있다. 사타안다기 가게는 실내로 들어가 2층에 있다고 해서 들어갔다. 안에는 주로 식재료를 파는 가게가 있다. 돼지고기를 파는 가게에는 소문으로 익히 들었던 돼지머리들이 즐비하다. 머리를 두개골은 발라내고 겉에만 저렇게 진공포장해서 팔고 있다. 먹을만 해 보인다. 물고기 종류를 파는 가게도 있다. 여기에서 물고기나 새우 같은 걸 사 가지고 2층으로 올라가면 그걸 요리해주는 식당이 있어서 즉석에서 먹을 수 있다.
2층에 올라오니 아직 10시밖에 안 되어 그런지 식당에 사람이 하나도 없다.
식재료를 들고 저 식당에 가서 요리해달라면 돈을 좀 받고 요리해 준다고 한다. 그냥 음식을 시켜 먹어도 되고. 나하에서 며칠 머물렀으면 꼭 한 번 가봤을 텐데 이번엔 그냥 들르는 정도라 다음을 기약했다. 두리번거리며 사타안다기 가게나 찾아보고 있는데,
있다. 여기가 그 사타안다기로 유명한 가게다. 그날그날 바로 튀겨서 한정된 만큼만 판다고 한다. 얼마나 먹을만 하길래 그런가 하고 벼르고 다가가 봤더니 뭔가 좀 이상하다. 가게에 사람도 없고 영업을 하는 분위기가 아니다.
이런 젠장. 일요일은 정기휴일이랜다.
이런 관광지에서 일요일에 영업을 안하다니 정말 유명한 가게가 맞긴 맞는 것 같다. 완전 배짱이다. 눈물을 흘리며 내려와서 시장통에 있는 사타안다기 가게에서 이것저것 여러가지 맛으로 샀다. 이 가게도 직접 만들어 파는 가게이긴 한데 맛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바나나, 망고, 백설탕, 흑설탕 등등 해서 6가지 맛이 있었다.
일요일이라 좀 이름이 알려진 곳은 다 배짱영업이다.
지난번엔 찾는데 실패하고 이번엔 가까스로 발견한 '타코스야'역시 휴일이다. 이게 뭐야. 정말 일요일날은 집에서 쉬기나 하란 소린지. 관광객에겐 일요일이고 뭐고 없는데... 여기 말고도 꽤 많은 가게들이 일요일이라 영업을 하지 않았다. 그냥 사타안다기나 하나 입에 물었다. 사타안다기는 역시 정겨운 맛이다. 추억의 맛과 냄새가 난다. 동네 구멍가게 도나스맛.
타코라이스고 젠자이고 결국 하나도 먹지 못했다. 젠자이는 젠장 어디서 파는 건지. 지금까지 끝내주는 여행이었는데 이것들을 못 먹어서 약간 빛이 바랬다.
좀 의기소침해서 걷고 있는데 앞에 예쁘장한 언니가 가게 앞을 쓸고 있다. 이쁜 언니는 빗자루랑 쓰레받기도 앙증맞은 걸 쓰나보다. 성실해 보이는 외모는 아니었는데 보기와는 달리 꽤 열심히 청소를 했다. 사람은 겉모습만으로 판단해선 안된다.
열라 걸어서 다시 돌아와 오키나와 야에서 과자랑 이것저것 샀다. '아라가키' 상표의 친스코는 별다른 향이 없는 플레인이다. 이게 확실히 다른 상표 것과 비교되게 맛있었다. 다른 제품들은 맛도 파인애플, 코코넛 등 여러가지가 있는데 다 그냥 그렇다. 그런데 예외적으로 짱인 게 있었는데, 미야코 소금을 넣어 만든 친스코가 진짜 맛있었다. 소금을 넣었대서 별 기대 없이 호기심에 그냥 시식해 봤는데 먹는 순간 정말 깜짝 놀랄 정도로 맛이 있는 거다. 당장 그것도 두어 개 샀다. 친스코는 설탕과 크림이 안 넣은 커피와 같이 먹으면 잘 어울릴 것 같은 느낌이다. 마트 같은데서 많이 파는 Lotus인가 하는 이름의 서양 비스킷이랑 맛이 조금 비슷하다. 그리고 타코라이스에 맺힌 한을 풀기 위해서 즉석 레토르트 식품으로 되어 있는 타코라이스도 구입했다.
이것이 이번 여행에서 마지막으로 남긴 국제거리의 모습이다. 온몸에 땀으로 목욕을 하고 꼴사나운 모습이지만 마음만은 감상적이 되어 아쉬움을 뒤로 하고 모노레일을 탔다.
나하 공항 국제선 청사는 정말 왕따 건물이다. 어떻게 보면 이시가키 공항 JTA 건물보다도 못한 것 같다. 가게도 하나 없고 떨렁 자판기 하나 있다. 가까스로 발권과 수속만 간신히 하고 있는 정도랄까. 그래도 출국수속을 하고 나오면 작게나마 면세점이 있긴 있다. 국내선에는 훨씬 큰 면세점이 있지만 그래도 이걸로 만족해야지. 없는 것보단 낫다. 술이랑 담배를 살 수 있으니까. 얼른 사고 귀국길에 올랐다.
돌아오는 비행기의 기내식은 뭐 별볼일 없었다.
그나마 밥을 준다는 게 위안이 좀 될까, 저 요리는 정체를 잘 알 수 없는 물고기로 만든 거였는데 북어처럼 좀 꾸덕꾸덕하게 말린 생선을 서양식 양념에 조린 음식이었다. 맛은 뭐 그냥 그랬지만 언제나처럼 다 먹었다. 나는 음식의 맛에 까다롭지만 아무거나 잘 먹기도 한다. 근데 오는 길에는 주위에 어린애들이 계속 떠들고 싸우고 지랄해서 성질 좀 죽이고 오느라고 힘들었다. 그렇게 키우면 안 된다고 한마디 하고 싶었는데...
어쨋든 무사히 귀국했다. 여행 끝. 이번 여행은 정말 좋았다.
이것저것 주섬주섬 사온 것들. '쇼핑이 목적인 여행'이란 걸 모르는 사람이라서 사는 거라고 해봐야 주로 저런 먹을 것들이다. 산토리 싱글몰트 위스키인 '야마자키'는 맛이 어떨까 궁금해서 사와봤다. 돈이 없으면 없는대로 술 한병씩은 꼭 사들고 와야 마음이 든든하다. 담배는 내가 좋아하는 '캐스터 마일드'다. 달짝지근한 맛에 아저씨 분위기라 좋아한다. 그리고 사타안다기랑 친스코랑 타코라이스.
이시가키 공항에서 산 이리오모테 산고양이 인형.
저 손(발?)을 모으고 있는 모습이 의외로 귀엽길래 샀다. 가격은 1000엔 정도로 생각보다 그렇게 비싸진 않았다.
6가지 맛의 사타안다기.
기름에 튀긴 거라 기름기가 잘잘 흐른다. 바로 만든 건 냄새도 죽음이다. 좀 놔뒀다 먹어도 맛있긴 하지만.
이시가키의 도로변 무인판매대에서 산 시쿼서.
한 봉지에 100엔이다. 껍질을 까서 그냥 한 번 먹어봤는데 너무 시어서 그냥 먹는건 도저히 무리다. 라임이랑 비슷한 것 같다. 즙을 내어 요리에 넣거나 레모네이드처럼 해서 마시면 될 것 같다.
산삥차와 웃찡차. 산삥차는 원래 자스민차랑 똑같은 맛인데 이건 New라고 붙어서 새로 나온 거길래 사와 봤다. 그래봐야 뭐 비슷하겠지만. 웃찡차는 그 한약스러운 진한 맛과 노란 색깔 때문에 마시기 쉽지는 않지만 먹을 만은 하다.
아래가 아라가키 상표의 친스코이고 위의 것이 미야코 특산 소금을 넣은 친스코이다.
박스에 보면 미야코 소금은 미네랄 함량이 세계 최대로 기네스북에 올라 있다고 한다. -_- 그런건 모르겠고 하여튼 저거 정말 오묘하게 맛있다. 짠 맛이 나면서도 단 맛고 있고 하지만 버터냄새같은 기름기가 없이 담백한 맛이다. 아라가키 것이 정통적인 친스코로서 맛있다면 미야코 소금을 넣은 건 묘하게 맛있다. 여기서 인터넷 쇼핑으로 살 수 있었으면 하는 정도다.
그리고 이것은 한 맺힌 타코라이스.
기어코 먹었다. 양상추랑 토마토만 썰어 올리면 되니 만들기도 쉽고 먹어보니 맛도 좋다. 타코라는게 고기가 들어간 거라서 밥과도 잘 어울린다.
아무튼 이걸로 여행기는 끝이다.
하지만 아마도 오키나와에는 조만간 다시 가지 않을까 싶다.
(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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