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날 3회 다이빙 한 게 타격이 컸는지 7시에 딱 못 일어났다.
오늘도 또 하루종일 다이빙을 하는 날인데 벌써 골골대서 조금 걱정이다. 오늘하고 내일이 이번 여행의 최대 고비다. 왜냐하면 어제-오늘-내일 이렇게 3일간 연속으로 종일 다이빙 콤보가 이어지기 때문이다. 아~ 정말 그놈의 다이빙이 뭔지. 이리오모테에 온 지 벌써 3일째인데 섬 구경은 뭐 요 동네밖에 못 했다. 이리오모테에 와서 별모래 해안에도 안 가보고 떠나게 될 판이다. 쳇~
늦잠을 잔 관계로 서둘러 아침을 대충 먹고,
그리고는 열라게 다이빙을 했다. ㅡ.ㅡ;;;
다이빙 관련 내용과 사진은 별도의 게시물로 올렸으니 다음 링크를 보시고~
이 날의 다이빙 보기 => (
[2007] 오키나와 낙도 다이빙 2 )
여전히 날씨는 3일째 화창하다 못해 내 살을 다 구워 먹을 작정이다. 그래도 다이빙을 하니 그나마 좋은 게 전신 수트를 입기 때문에 등이나 어깨, 종아리 부분은 별로 타지 않아서 좀 살만 하다.
어제와 마찬가지로 첫번째 다이빙을 마치고 또 도시락을 까먹는다. 오늘은 어디에 가서 까먹을지 기대를 좀 했는데 그냥 우에하라 항으로 다시 돌아와 정박하고 먹기로 해서 좀 김이 샜다. 역시 도시락 다 먹으니 배가 빵빵하다. 680엔짜리 고급(?) 도시락이라 뭔가 다르다. 오늘 메뉴에는 고야 챰플도 있고 뭐 없는 게 없었다. 여전히 또 파인애플도 잘라 주고 이젠 나도 아예 당연하다는 듯이 낼름낼름 받아 먹고 있다. 겨우 이틀밖에 안된 놈이 아주 살던 놈처럼 구는 구나.
밥을 먹고서는 큰 맘 먹고 육지에 올라가 담배나 슬슬 피며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몸이 너무 안 타서 살도 태울 겸 부두에서 애들처럼 두리번거리며 놀고 있는데, '핫 맹그로브'라고 또 다른 다이빙샵 트럭이 이쪽으로 온다. 자기네 보트에 공기통을 교체하려고 탱크를 잔뜩 싣고 왔다.
근데 운전수가 무슨 쬐그만 여자애였다. 까무잡잡해가지고 키는 한 150쯤 될래나? 나이도 스물 갓 넘어 보인다. 목에다가 수건을 야무지게 둘러 매고서 쫄래쫄래 일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까 재미있다. 근데 Mr.사카나의 마리코상한테 내가 한국에서 왔다는 말을 듣더니만 갑자기 나한테 와서 말을 거는 거다. "안뇽하세요. 죠는 머시기머시기이무니다. 한국 친구에게 한국 말 배웠씀미다." 인사말 배운 걸 어찌 기억하고 나한테 말하고선 의기양양하게 씩 웃는 걸 보니 참 귀엽다. 그러면서 또 열심히 공기통을 나른다.
여행을 하면서 새삼 느꼈던 게 있는데, 적어도 이쪽에서 본 여자애들은 남자애들하고 똑같이 일한다. 짐도 똑같이 짊어지고 운전도 똑같이 한다. 여자애라고 편의를 봐주는 것도 없고 또 자기들도 그런걸 바라지도 않는다. 이곳 섬에서만의 특징일 지도 모르겠지만 우리나라와는 그 점이 참 다르다고 느꼈다. 도쿄 같은데 있는 멋쟁이 아가씨들은 안 그럴 지도 모르지만 어짜피 내가 보기에는 여기 언니들이 더 멋져 보이니까.
한 낮의 항구는 아주 한가하다. 시간이 가는 것 같기도 하고 안 가는 것 같기도 하다.
점심 시간이 끝나고 또 열라게 다이빙을 했다. 오늘은 중간부터 머리가 좀 아파와서 3번째 다이빙은 취소를 하고 좀 일찍 숙소로 돌아왔다. 덕분에 장비도 말리고 세탁기 돌릴 시간도 있어서 이리오모테에 온지 3일만에 낮시간이 좀 여유있었다.
낮에는 숙소에 사람이 거의 없다. 다들 아침 먹고서 저마다 관광을 하러 나서서 저녁때가 돼야 돌아오기 때문이다. 나처럼 다이빙을 하러 간 사람도 있고, 렌터카로 섬을 둘러보는 사람도 있고, 카누를 빌려 강을 거슬러 올라가 숲속을 하이킹 하는 사람도 있다. 여기 이리오모테는 할 게 넘쳐난다. 느긋하게 시간을 보내기에는 가 볼 곳이 너무 많은 섬이다.
대충 정리를 하고 한숨 돌리고 있으려니 저기 구석에 있는 통 안에 뭔가가 덜그럭거린다. 들여다보니 야자게다. 아침에 누가 잡아다가 여기에 넣어 놓은 것 같다. 야자게라니... 이런 거 직접 보는 건 또 처음이다. 크기가 킹크랩만했는데 아직 덜 자란 새끼란다. 자라면 훨씬 더 커진다고... 이 놈은 보통 게 종류가 아니고 소라게 종류라서 생김새가 게와는 좀 다르다. 물에는 전혀 안 들어가고 육지에서 사는데 이런 종류의 게 중에서는 제일 큰 종자라고 한다. 먹으면 또 맛이 끝내줘서 이시가키 식당 같은데서는 비싼 메뉴로 팔리는 모양이다. 다리도 엄청 튼튼했는데 까딱하면 집게에 손꾸락이 잘린다고 해서 열라 겁먹으면서 살살 만졌다.
별 달리 할 일도 없어서 또 그냥 산책이나 했다. 탐스럽게 핀 하이비스커스와 이름 모를 꽃들.
우에하라 취락의 거리는 이제 우리 동네 만큼 익숙하다.
대충 동네를 한 바퀴 돌고 들어 왔더니 어느새 나갔던 사람들이 돌아와 있다. 왼쪽의 두 남녀는 부부인데 오늘은 렌터카로 오오하라까지 갔다 왔다고 한다. 와이프 키가 거의 나만하고 남편은 나보다 작은데, 그래서 그런지 남편이 아내한테 쬐끔 쥐어 지내는 것도 같더라. 이 사람들하고는 나중에 이시가키 길거리에서 다시 우연히 만나게 된다. 야에야마 바닥은 좁다.
이 숙소도 영업한 지 꽤 오래 됐다. 홈페이지를 보면 한 30년은 된 것 같은데 그래서 실내에 빛바랜 사진들이나 그런 옛 정취가 묻어나는 소품들이 많았다. 저기 벽에 걸려 있는 야자게의 박제가 다 큰 놈이다. 크기가 정말 장난 아니다. 그러니 애들이 집으로 쓸 소라가 없어서 야자열매나 따먹으며 살지.
변함없이 저녁식사는 훌륭하다. 오늘은 커다란 게를 넣고 된장국을 끓였는데 집게 하나가 주먹만하다. 거기에 가쓰오 사시미와 파파야 채썬것, 튀김, 생선구이 한토막, 정체불명의 나물, 문어와 정체불명의 해조류(우무같이 뭉글뭉글하하다), 토마토, 과일(파인애플,패션후르츠), 여기에 사진엔 없지만 반찬이 하나 더 나왔다. 보기에는 소박하지만 따져보면 정말 이만큼 화려한 식사도 없다고 생각한다.
저녁을 먹는 동안 잠깐 소나기가 내리는 것 같았는데 나와 보니 금세 그치고 이렇게 무지개가 떴다. 여기는 작은 섬이니까 저기 무지개 뿌리가 있는 곳까지도 그리 멀지 않을 테지. 마음은 이미 저 길 너머로 달려가고 있었지만 실제로는 너무 쪄죽을 것 같이 더워서 그냥 마음만 달려가기로 했다. 다음날 아침 일찍 이리오모테를 떠나야 하기 때문에 조용히 꽃이나 보면서 맥주나 마시고 코인쿨러 바람을 맞으며 짐을 꾸렸다. 내일은 쿠로시마로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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