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오키나와 낙도 기행 5 오키나와 여행

2007年 6月 30日 (土)

쿠로시마에서의 이틀째 날이 밝았다.
오늘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날이다. 그렇다기 보다는 계획해 둔 일정이 아무것도 없다고 말하는게 맞으려나. 하여튼 흘러가는 시간을 즐기기 위해 빼 놓은 하루다. 야에야마에 온 지 4일이 지났는데 다이빙으로 빡빡한 일정을 보내느라 지친 나를 위해 내가 특별히 마련해둔 휴식의 시간이다.

이시가키나 이리오모테에 비해서 특히나 여기 쿠로시마는 그렇게 빈둥대며 시간을 보내기에 최적인 곳이다. 섬의 풍경 자체도 한껏 펼쳐져 있는 벌판에서 소들이 풀이나 뜯는 목가적인 분위기인데다가 유흥시설 같은 것도 없고, 그냥 아무데나 햇빛만 안 드는 곳에 누워 있으면 바람이 슬슬 불어 아주 시원하기 때문이다.

아침을 먹고서 일찍부터 빈둥대고 있으려니 어제 알게 된 친절한 부부가 오늘은 뭐 하고 지낼 거냐고 말을 건다. 그냥 이렇게 있다가 점심쯤 되어서 바닷가나 갔다 오려고 생각중이라 말하니 자기네랑 똑같단다. 그렇겠지. 여기 온 사람들의 일과는 다들 크게 다르지 않다. 다이빙을 가지 않는 사람들은 바닷가를 가고, 바닷가에 가지 않는 사람들은 자전거로 섬을 둘러 보고, 그것도 하지 않는 사람들은 방에 눕거나 마당에 앉아 그저 시간을 보낸다. 귀여운 부인과 사람 좋게 생긴 남편의 저 부부도 어제 스노클 투어를 하고 왔으니 오늘은 쉬면서 바닷가에나 나가 보려는 거고 나도 마찬가지다.

쿠로시마에서 바닷가라고 하면 바로 나카모토(中本)해안을 말한다. 간조 때가 되면 리프 안쪽이 풀장 같이 되어서 파도도 없고 놀기에 딱 좋다. 그래서 다들 간조 때를 맞춰서 바다에 가는데, 민숙 카운터에 날짜에 따라 밀물과 썰물이 언제인지를 알려주는 시간표가 붙어 있다. 오늘은 12시경에 썰물이라서 그때쯤 나갈 생각으로 있는데, 그 부부가 자기네는 마을 가게에 점심때 먹을거리를 사러 간다고 같이 가지 않겠냐고 한다. 할 일도 없고 어짜피 민숙에서 점심도 안 주니까 나도 같이 따라 나섰다.

이 섬에 가게라고 할 만한 곳은 자전거로 15분 정도 떨어진 마을에 딱 한군데 있다. 마을로 가는 길 옆에는 온통 풀밭이다.

내가 길을 모르니 부부가 앞장서고 나는 뒤따라 갔다.
그렇게 따라 가면서 나란히 자전거를 타고 얘기를 건네며 가는 이들의 모습을 뒤에서 보고 있노라니 너무 부러웠다. 아니 부럽다는 생각도 있었지만 뭐랄까 그냥 그 광경 자체가 참 보기 좋은 거다. 난 이런 것에 약하다. 눈물이 나오려고 하는 걸 애써서 참았다.


풀밭에는 소들이 놀고 있다.
여기 쿠로시마에는 산이라고는 작은 언덕배기 하나도 찾아 볼 수 없다.



자전거로 꽤 달려서 가게에 왔다.

가게는 뭐 예상했던 규모의 그런 곳이었다. 우리나라 시골에도 흔히 있는, 가정집 한쪽을 조금 개조하여 거기에 물건을 몇 가지 놓아두고 파는 그런 작은 가게. 점심때 먹을 주먹밥을 사려고 왔는데 아직 이시가키에서 오는 첫 배가 도착하지 않아서 아무것도 없단다. 20분 정도 기다려야 배가 와서 물건을 내려 갖고 온다고.

출근길에 쫓기는 것도 아니고 여긴 쿠로시마이기 때문에 우리는 음료수를 하나씩 마시면서 가게 옆에 앉아 슬슬 물건이 오기를 기다렸다. 이 부부는 나고야 쪽에 산다고 했던가. 이런 저런 사는 얘기를 했는데 30대 정도의 나이대라 그런지 재테크에 관심이 많아서 같이 주식 얘기도 좀 했다. 한국의 주식시장이 올해 급등했다는 사실이라든지, 한국에서는 개인들이 직접 주식을 사고 파는 경우가 이젠 일반적인 일이 되었다든지 하는 것들을 잘 알고 있었다. 자기네들도 주식을 몇 번 매매하곤 하는데 매번 잘 안된다며 웃었다. 나는 사실 올해에 산 주식이 꽤 올랐는데 얘기하려니 좀 미안해져서 나도 그냥 웃고 넘어갔다.

주먹밥 두 개와 사타안다기 한 봉지를 사 가지고 돌아왔다.


민숙 뒤켠에 고양이가 몇 마리 있다. 어미같아 보이는 놈이 앉아 있는 걸 보고 있노라니 어느새 뒤에 새끼 두 마리가 쫄래쫄래 따라 나와 나를 호기심어린 눈으로 쳐다본다.


여기 있는 고양이는 늘씬하고 머리도 작아서 맵시있고 멋있게 생겼다. 다리도 쫙 빠졌고 눈매도 적당히 도도하게 찢어져서 내가 보기엔 아주 근사했다.



방에 드러누워 빈둥거렸다. 내 발가락이 꼼지락거리는 걸 보면서 시간이 가는 걸 느끼는 것도, 내가 사는 곳에서라면 한심한 짓이지만 이곳에서는 낭만이자 사치가 된다.





야옹이 엄마와 아빠 둘이서 내 방 앞에 와서 논다.
툇마루에 앉아서 마냥 그걸 지켜보고 있는 것도 여느 최고의 관광코스 못지 않은 소중한 여행의 기억이 되겠지.

오전 시간을 그렇게 한가로이 보내고서, 슬슬 짐을 꾸려서 바닷가로 나섰다. 여기 민숙에서 나카모토 해안까지는 걸어서 간다. 작은 오솔길을 따라 5분 정도 걸어 가면 곧 바다가 나온다.



나카모토 해안이다.

스노클링 하기에 좋기로 야에야마에서 손꼽히는 바닷가다. 마침 썰물 시간도 딱 맞춰서 사진처럼 저렇게 리프 안쪽이 완전히 풀장같이 되어 있었다. 풀장 같은 곳이 왼쪽에 크게 하나, 오른쪽에 크게 하나 이렇게 있는데, 저기서 오른쪽으로 해변을 따라 계속 더 가면 바다거북이 산란을 하러 오는 서쪽해안과도 만나게 된다.

급한 마음에 일단 얼른 내려가서 보니 이미 사람들이 꽤 나와서 일광욕을 하고 스노클을 즐기고 있다. 산호가 잘 발달해 있는 것도 그렇지만, 해변의 넓이도 넓은데다 실제로 즐길 수 있는 풀장같이 되어 있는 영역이 일단 아주 넓은 게 마음에 쏙 들었다.

여기 야에야마 지방의 해변을 보면 크게 두 종류로 구분할 수 있는 것 같다. 하나는 백사장 위주의 해변이고 다른 하나는 산호 위주의 해변이다. 다케토미섬의 콘도이비치라든지 이시가키섬의 스쿠지비치 같은 곳은 백사장 위주의 해변이다. 이런 곳은 백사장의 폭도 넓고 바다의 바닥도 모래사장이라 일광욕을 하거나 가볍게 해수욕을 하기에 좋다. 반대로 이리오모테섬의 별모래해안이나 여기 나카모토해안 같은 곳은 모래사장은 별로 없고 바다의 바닥도 온통 산호투성이라 일광욕 같은 걸 하기에는 덜 좋지만 그 대신 물속에 물고기들이 득시글거려서 바다에 들어가 보고 놀 것들이 엄청나게 많다.



바위로 된 언덕 위에 시멘트로 만든 정자가 하나 있고, 백사장이 있기는 있지만 보다시피 그리 넓지 않다. 민숙의 그 부부는 나보다 먼저 출발해서 이미 저렇게 텐트를 쳐 놓았다. 텐트 안에는 아무도 없는 걸 보니 둘 다 바다에 나갔나보다.



나도 얼른 채비를 하고 입수했다.
물 속을 보니 이제는 익숙한 풍경이 있다.



이쪽 바닷가에는 어디에나 있는 저 작고 파란 자리돔들과 귀엽게 생긴 쥐치가 보인다. 그리고 꽤 큰 소라게를 발견했는데 건드리자마자 꼭꼭 숨어버려서 뚜껑 역할을 하는 집게발 하나밖에 못 찍었다.



해변에 나와 보면 이런 모습이다.

저기 누런 바닥은 사진으로 보면 얼핏 진흙탕 같아 보이지만 모두 딱딱한 산호이다. 그래서 맨발로는 도저히 다니기 힘들고 최소한 아쿠아슈즈라도 신고 들어와야 한다. 해안가 쪽을 보고 찍은 사진인데, 저기 보이는 풀장 같은 곳은 깊이가 보통 1~2미터 정도라서 적당히 스노클링 하기에는 딱 좋다. 하지만 저렇게 보여도 깊은 곳은 2~3미터 되는 곳도 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수영은 할 수 있어야 제대로 즐길 수 있다.

나는 지금 저 풀장을 지나 바다쪽으로 더 걸어가고 있다. 처음 해변 사진에서 하얗게 파도가 부서지는 곳, 리프 가장자리를 향해 가고 있는 거다. 작년에 이리오모테 별모래 해안에 갔을 때에도 리프 에지까지 걸어 가서 잠깐 서 있다 이내 돌아왔다. 들은 얘기로는 상급자의 경우 그 리프 바깥쪽으로 잠수하여 스노클링을 한다고 하는데, 그 얘기만 듣고 작년에 가 봤다가 금방 겁먹고 돌아섰었다. 그때는 이런 열대 바다가 처음이었고 지금은 두 번째이고 다이빙도 배우고 했으니 한번 더 가 보기로 한 것이다.


걸어가는 도중에 바닥을 보면 이렇게 찰랑찰랑 발목 정도까지만 차는 바닷물 밑으로 산호가 비쳐서 색이 참 예쁘다. 마치 조약돌로 된 바닷가의 바닥을 보면 보이는 색과 비슷하다.

리프 가장자리까지 다 왔다.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려 바라보니 파도가 하얗게 부서지는 곳을 경계로 하여 내가 서 있는 이쪽과 그 너머 바다쪽의 색깔이 확연히 구분되어 보인다. 갑자기 겁이 덜컥 밀려온다.


왼쪽으로 고개를 돌려 바라봐도 역시 이렇게 마찬가지이다. 저 파도 건너 바다의 깊이는 어느 정도인지...


정면을 바라보면 이렇다. 무슨 낭떠러지 끝에 서 있는 기분이다. 조금 큰 파도가 치면 물결 때문에 몸이 좀 휘청거리기도 한다.

바로 여기이다. 내가 경험한 바다 중에서 가장 심박수가 높아지고 아드레날린이 분출되어 감정이 요동치는 위치.

깊이로 따지자면 보트를 타고 한참 나가 있는 다이빙 포인트가 더 깊을텐데, 거기에서는 바다에 그냥 뛰어 들 수 있지만 여기에서는 한 발짝 내딛어 들어갈 결심을 하기가 어렵다. 다른 사람들은 거리가 100미터는 되어 보이는 해변가에 있고, 나 혼자 뛰어 들었다가 바다로 떠밀려 간들 소리쳐도 들리지 않겠지. 여러 가지 생각이 드는 거다.



좀 더 걸어 가서 리프 에지의 바로 맨 끝에 서 보았다. 한 발치만 내 딛으면 들어가는 건데.

팔을 뻗어 카메라를 물 속에 넣고 사진을 찍어 보아도 별로 보이는 것이 없다. 파도 때문에 하얀 기포들로 어지럽다.

저 파도를 보면 겁이 더럭 난다. 높은 곳에서 아래를 내려다 볼 때의 그 느낌이랑 비슷하다. 무서우면서도 이상하게 마음 속 어디 한 켠에서 스물스물 올라오는 그 뛰어내리고픈 기분 나쁜 감정. 여기서도 마찬가지다.

뛰어들진 못하고 다시 거기서 손을 넣어 사진을 찍었다. 겁쟁이인 주제에 그래도 아래 속은 어떤지 궁금했기 때문일까. 하지만 사진으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산호 너머엔 그 밑으로 그냥 파란색의 바다만 보일 뿐.

결국 나는 뛰어들지 못했다.



한참을 그렇게 서 있다가 돌아섰다.
돌아서 보니 너무나도 예쁜 색깔의 바다가 보인다. 하늘과도 닮았지만 그보다 더 깊은 색의 바다는 그저 아름다울 뿐이다. 바로 등 뒤의 바다는 그렇지 않지만.

누군가 혼자 걸어서 리프 에지로 가고 있다. 저 사람도 나와 비슷한 생각으로 거기에 가는 걸까.

다시 풀장으로 돌아와 놀기로 했다. 혼자서 괜히 죽을 각오를 하고 덤빈다고 해서 바다가 거기에 응해 주는 것도 아니고 하니, 남은 시간은 그저 이렇게 즐겁게 보내야지.



두 번째 사진 왼쪽에 노란 물고기가 카메라를 정면으로 보고 포즈를 취해 주었다.

이름은 모르지만 꽤 고운 빛깔의 물고기도 있고.



깊이가 좀 되는 곳들은 잠수해 들어가 보면 이렇게 산호 밑에 고기들이 모여서 숨어 있다. 이리오모테의 별모래 해안의 물고기들은 상대적으로 겁이 없어서 사람을 무서워 하지 않고 다가왔는데, 여기 나카모토 해안의 물고기들은 사람이 다가가면 도망가기 바쁘다.

좀 놀다가 잠시 쉬기 위해 해변 쪽 물가로 나왔다. 대충 내 키 높이쯤 되려나 하는 곳을 지나고 있는데 저 멀리 뭔가 커다란 놈이 바닥에 보인다. 대물(大物)을 좋아하는 나는 조금 기대감에 차서 그쪽으로 가 보았더니,


글쎄 이런 놈이 있었다. 타이탄 트리거피쉬(Titan Triggerfish), 일본어로는 'ゴマモンガラ'라고 하는 놈이다.

화면상으로는 몇번 본 적이 있는 것 같은데 실제로 이렇게 눈 앞에서 보는 건 처음이다. 게다가 다이빙도 아니고 스노클링으로 이렇게 얕은 바다에서 발견해서 좀 놀랐다. 열심히 거꾸로 서서 바닥을 쪼아대는 걸 보니 먹을 것을 찾아서 해변가로 나온 것 같다. 이런 물고기를 수면에서만 바라보는건 너무 아깝기 때문에 얼른 잠수해서 바닥에 착 붙어 다가갔다.



잠수를 하니 금세 알아버리고 도망가려 한해서 사진 한장 제대로 찍기 바쁘다.

그런 와중에 힘들게 건진 정면샷 한 장.

얘는 진짜 색깔도 요란하고 생긴 것도 웃기게 생겼다. 게다가 크기는 뭐가 또 이리 큰지. 꼬리 끝까지 해서 60cm 정도 되는 것 같았다. 그만한 놈을 저렇게 눈 바로 앞에서 보면 박력이 꽤 있다. 웃기기도 하고.




도망가길래 나도 열심히 쫓아가서 끝까지 몇 장 더 찍었다.

그러고 주위를 보니 저놈 한마리가 아니라 몇 마리 더 있었다. 해변가로 가는 길에 다른 놈을 또 발견해서 그놈은 동영상으로 찍었다. 내 수중용 카메라가 구닥다리라 동영상이 간신히 되는 옛날 물건인데 그냥 촬영에 의의를 두고 찍었다.





(쿠로시마섬의 나카모토 해변에서 찍은 타이탄 트리거피쉬 영상)



가다보니 타이탄 트리거피쉬의 미니어쳐를 보는 것 같이 귀여운 쥐치도 봤는데, 얘는 근처에 둥지라도 지었는지 나한테 저렇게 하도 공격적으로 나오길래 그냥 얌전히 지나갔다.


나와서 뭐라도 사먹을 생각으로 언덕을 올라갔다.


일단 정자에 앉아서 좀 쉬었다. 여기가 거의 이 해변에 있는 유일한 인공적인 그늘이다. 사람들이 도시락을 까먹거나 쉬거나 한다. 그리고 여기서 바라보는 경치도 좋고.

나는 숙소에서 가까워 걸어 왔지만, 다른 데서 온 사람들은 자전거를 타고 와서 이렇게 그냥 세워 둔다. 자전거를 타고 가는 해변이란 건 실제 경험해 보면 생각한 것보다 훨씬 운치있고 낭만적이다.

슬레이트로 지은 간이 매점도 여기 바닷가와 잘 어울린다. 주먹법은 이미 아까 다 먹어버렸기 때문에 배가 고파서 컵라면을 사 먹었다.



저 넓은 해변을 그저 몇 명이서 마음껏 누리고 있다.



이런 데 오면 난 그냥 이걸 먹어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빙수를 하나 사서 먹으면서 위의 사진처럼 저런 구도로 한장 남겨야 밀린 숙제를 한 것 같은 기분이다.



백사장은 없지만 멀리 보이는 경치라든가 바위쪽 풍경은 꽤 멋있다.



컵라면으로 점심을 때우고 다시 내려와 보니 텐트에 남편만 혼자서 자고 있다. 부인은 계속 바다에서 놀고 있나 보다. 나는 슬슬 돌아갈 채비를 했다. 또 숙소에 가서 하루의 남은 시간을 빈둥대야 하기 때문이다.

짐을 챙겨 가려는데 보니 어떤 아가씨가 용감하게도 일광욕을 하고 있다. 이 햇볕에 일광욕이라니 정말 대단하다.

숙소로 돌아와 스노클 장비를 세척해 널어 놓고 또 한가하게 빈둥댔다.

그러던 와중에 다음날 이시가키 다이빙샵에 전화를 해야 한다는 게 생각났다. 난 휴대폰도 없고 숙소엔 공중전화도 없는 것 같다. 겸사겸사 공중전화에서 전화도 할 겸 자전거를 타고 항구까지 가 보기로 했다. 어제 오면서 보니 항구 옆에 자그마한 카페가 있던데 거기에서 오키나와 젠자이라도 하나 먹고 오고 싶은 생각도 들고 해서 자전거를 타고 길을 나섰다. 항구까지는 2km 정도 되는 거리라 이 날씨에 걸어가긴 무리이고 자전거로는 한 20분 정도 걸린다.



이제는 익숙해진 풍경들.

울타리에 카메라를 놓고서 내 사진도 찍고.



소들은 언젠가 우리들 입으로 들어갈 운명이지만 적어도 지금만큼은 여기서 이렇게 느긋하게 지내고 있다. 좁은 축사에서 사료만 먹다가 생을 마감하는 다른 소들보다는 그래도 좀 나은 팔자겠지.



작은 섬이지만 이런 들판을 보면 작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섬이라는 것도 잠시 잊게 된다.

이 길 끝에 항구가 있다. 길에는 지나가는 차도 거의 없고 나 혼자뿐이다.


항구에 와서 전화를 하고 그 옆에 있는 카페에 들렀다. 이 쿠로시마가 생긴게 하트 모양이라 카페 이름도 HEART LAND이다. 가게 앞에 자전거를 세워 두고 슬쩍 들어가 보았다.

입구는 카페 뒤쪽에 있는데 그래도 꽤 예쁘게 꾸며 놓았다.

들어가니 한 테이블에 손님 둘이서 음료수를 마시고 있다. 난 오키나와 젠자이를 먹고 싶어서 시켰는데 글쎄 다 떨어져서 젠자이는 없단다. 오늘 날씨가 유난히 더워서 금방 매진되었대나. 아, 젠자이는 작년에도 못 먹었고 올해도 아직 맛도 못 봤다. 이시가키에 가야 먹을 수 있을런지. 할 수 없이 그냥 메론 빙수를 시켰다.

빙수의 양이 엄청나다. 옆에 있던 손님 둘이서 내 쪽을 보고선 '대단한 양이잖아. 저거 혼자 다 먹을 수 있을까'라며 얘기를 한다. 내가 웃으면서 다 먹을 수 있다고 말해줬더니 그쪽도 웃는다.

빙수를 먹고 다시 땀을 뻘뻘 을리며 돌아오는 길.
빙수 때문에 잠깐 시원해 졌지만 금세 또 땀이 흐른다. 여기선 이렇게 수건을 목에 두르고 다니는 패션이 아주 유용하다. 뭐 보기에도 썩 나빠 보이지도 않고.

돌아오니 다이빙 나갔던 주인 아저씨가 돌아와서 아주머니를 도와 저녁 준비를 하고 있다. 무슨 고기 굽는 냄새가 나던데.

저녁 식사는 역시 맛있었다. 메뉴는 차가운 돼지고기 볶음, 가쓰오와 다른 물고기의 회, 고야 챰플, 계란 등이 들어간 국, 샐러드, 단무지 등등이었다. 바다에서 돌아온 부부와 같이 밥을 먹으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했다. 그 과테말라 남자의 커플은 오늘 낮에 떠났기 때문에 다행히 저녁식싸 때에는 없었다.

식사를 하고 바람도 쐴 겸 옥상에 올라갔다. 소들은 낮에도 밤에도 저렇게 자유롭게 방목되는 것 같다. 조금 있으면 또 옥상에서 아와모리와 맥주로 파티가 열릴 참이다.


어제는 실내에서 좀 마시다가 올라왔는데 오늘은 일찌감치 처음부터 옥상으로 올라왔다. 산신 연습하는 그 친구와 한국에도 좀 가 봤다던 요네카와와 셋이서 주로 얘기를 하면서 마셨다. 요네카와는 쿠로시마에 이미 여러 번 오는 거라 했다. 우린 반신반의 했지만 나카모토 해안에서 바다거북을 본 적도 있다고 한다. 뭐 거북을 볼 수 없더라도 나카모토 해안은 충분히 좋은 곳이었다. 쿠로시마도.

요네카와는 내일 오후에 이시가키로 가서 모레는 렌터카로 이시가키를 둘러볼 거라고 했다. 나도 내일부터는 이시가키로 간다 했더니 자기 렌터카로 같이 다니자 했는데, 난 모레 일정이 어떻게 될지 몰라 확답을 못 해 주었다. 내일은 다이빙을 하겠지만 모레는 다이빙을 할지, 하테루마를 갈지, 그냥 이시가키를 돌지 아직 정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또 밤 늦게까지 옥상에서 시간을 보냈다. 쿠로시마에 오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든다.

내일은 또 아침 일찍부터 이시가키에서 다이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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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y0n2 2007/10/01 17:32 # 삭제 답글

    드디어 업데이트 하셨군요!
    요즘 많이 바쁘신가 봅니다. 한달 넘게 하루도 안빼고 들어와봤습니다... 저는 스쿠바 다이빙을 기존에 하던 중 올해 초 만타로 유명한 장소를 알아보다가 이시가키를 알게 되었고, 그 때 랭보님의 블로그를 알게 되었습니다. 이시가키를 알고 스쿠바를 배우신 랭보님과는 역순이네요 ^^
    일어를 거의 못하는 저에겐 랭보님의 낙도기행이 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내년 7월에 갈 계획인데 앞으로도 많은 도움 부탁드립니다.
  • 랭보 2007/10/01 22:09 # 답글

    이시가키 다이빙도 곧 올리겠습니다. 그리고 이쪽 지역의 다이빙 관련한 내용도 한번 정리해서 올릴 예정입니다. 여름 무렵에 가면 이틀 정도 들어가면 거의 확실히 만타를 볼 수 있는 것 같습니다. 만타가 매일 나오다시피 하는데 가끔 안나오는 날이 있어서 딱 하루만 들어가면 허탕을 칠 수가 있습니다. 제가 그랬습니다. 내년에 저도 갈 계획입니다.
  • 2007/10/04 00:30 # 삭제 답글

    랭보님~~저도 왔오요~ㅎㅎ...와...사진도 진짜 잘찍으시네요...

    그 작은 슈퍼...저도 거기가서 주먹밥사묵었는데.....^^

    ㅎㅎ

    전 쿠로시마 하니...전날 태풍온다고 해서 썬크림도 안바르고 화장도 안한상태에서 자전거타다가 길 잃어서...지금 흑인 가수같다는 얘길 하루도 빠짐 없이 듣고있답니다...ㅡ.ㅜ

    3시간을 쉬지 않고 달리기만 한 격이....ㅡ.ㅜ좀 많이 심한 길치.....쿠로시마에서 길 잃을곳이 어딨다고 하실지 모르겠지만...ㅡ.ㅜ

    12시쯤 바다에서 스노쿨링 하는것이 좋다고 들었지만 일정변경이 힘들어서 전 구경만하고 아쉽게 돌아왔는데...

    아쉬움을 여기서 다시 달래게 되네요...^^

    이시가키 다이빙 얘기도 변함없이 기대되네여...^^

    또 올께요...^^
  • 랭보 2007/10/04 01:46 # 답글

    익숙한 곳을 다른 사람의 사진으로 보니 반갑고 좋지요? 그러니 나도 쭈님의 사진이나 얘기를 보고 싶은데 말입니다.
    참 좋은 곳입니다. 그렇지요?
  • 2007/10/05 19:46 # 삭제 답글

    맞아요..참 좋은곳...

    그나저나 언넝 노트북을 구입해야 사진을 올릴 수있을듯...

    약 2천장 가량 찍었는데 아직도 메모리카드 속안에 쏘옥...

    날라갈까 걱정뿐입니다.

    랭보님 글한번 읽을라믄 스크롤바 한번 내리고 2,3분 기다려야 사진이 뜨는...매우 낡은 컴이라..

    제사진 올리는건 엄두도 못내요...ㅠㅠ

    막 자랑하고 싶은데~ㅎㅎ
  • 랭보 2007/10/09 00:32 # 답글

    빨리 노트북을 사서 자랑하시기 바랍니다.
    어서요~
  • 서룽 2007/12/09 17:38 # 삭제 답글

    앗.. 저놈인가요?? 타이탄 트리거피쉬-_-);;
    이번에 회사에서 괌놀러갔는데...
    어디선 본듯해서 귀-_-여워해줄력고 갔다가 3방 물렸어요;;;
    상어도 아니고 물고기한테 물려서 피가 나다니.. ㅠㅠ
  • 랭보 2007/12/09 22:30 # 답글

    산란기에는 알을 지키려고 난폭해져서 둥지 가까이 가면 막 물어.
    ㅡ.ㅡ
  • 무비동자 2008/04/21 15:18 # 삭제 답글

    안녕하세요. 아와모리 전문 유통 업체 SE 주류 유통입니다.
    저희 사이트에 오셔서 구경 한 번 하고 가세요~

    www.awamori.co.kr
  • 이젠아빠 2011/09/08 21:30 # 삭제 답글

    올해 초에 예약하지 않으면 소멸되어 버리는 항공 마일리지가 있어, 기왕이면 일본 중에서도 가장 멀리 있는 곳에 가보자라는 생각에 이기가키 왕복 항공권을 신청했는데, 그게 이달 말이네요. 도대체 어떤 곳인지라도 알아보자라는 생각에 잠시 검색했다가 덕분에 조금은 알고 가게 되었습니다. 오며, 가며 대부분의 시간을 소비하고 정작 여행지에서 머무는 시간은 사흘 남짓일 것 같네요. 모험가도 스포츠맨도 아니지만 이 쿠로시마 섬 정도라면 잠시 치열했던 몇 년을 잊고 팽팽해진 신경을 조금은 풀고 올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되네요. 고맙다는 말씀 남기고 갑니다.
  • 랭보 2011/09/09 01:10 #

    시간이 흘러간다는 걸 자각하는 순간 오히려 여유로움을 느끼게 되는 그런 한 때가 되길 기원합니다. 정말로 그렇게 팽팽했던 신경을 조금이나마 풀 수 있었으면 정말 좋겠네요. 장담은 못하지만 나쁘진 않을 거라 생각합니다. 좋은 여행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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