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리 └ 먹는 것


오랜 기간 동안 동경하던 것을 실제로 경험했을 때 실망하는 경우가 많다. 머리 속에서 환상으로 키워 온 기대가 현실이 뛰어넘기에는 너무 커져 버렸기 때문이다. 인간의 상상력은 실로 위대하다.

하지만 체리는 그것을 우습게 넘어 버렸다. 30년간을 인공 체리향만 맡아 오다 작년에 처음 생(生) 체리를 먹어 본 순간, 나는 세상은 넓고 내가 아직 경험해 보지 못한 것이 넘쳐난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오도독 소리를 내며 씹히는 탱탱한 과육과 핏빛으로 흘러내리는 선홍색 과즙은 이미 어지간한 것에는 심드렁한 반응밖에 보이지 않게 되어 버린 무심한 삼십 대의 메마른 감수성을 완전히 뒤흔들어 깨워 놓았다. 30년을 속아 온 나의 인생이었다.

1년이 지나 체리가 나오는 계절이 돌아왔다. 이 초여름 짧은 한 철에 잠깐 나왔다 간다. 겨울이 되면 남반구에서 기른 녀석이 들어오기도 하지만, 그 때이건 어느 때이건 1년 내내 체리는 꽤 비싸고 지금이 가장 싼 값에 사서 실컷 먹을 수 있는 짧은 기간이다.

집 앞 홈플러스에서 100g당 1,200원에 팔고 있길래 실컷 먹으려고 3kg을 사 가지고 왔다. 작년에는 코스트코에서 사다 먹었기에 올해도 제철이 되면 가야지 하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거기까지 가지 않아도 충분히 저렴한 가격인 것 같아서 그냥 여기서 사 먹기로 했다. 들리는 얘기에 의하면 올해 코스트코의 체리 가격은 작년과 달리 그렇게 싸지 않다고도 하고.

급한 마음에 얼른 찬물에 씻어 몇 알 집어 먹고, 차갑게 먹고 싶어 냉동실에 잠시 넣어 두었다. 얼기 직전에 꺼내어 먹으면 그 달콤함과 탱글탱글함이 절정에 달한다. 냉동실에 넣어 둔 시간이 좀 오래 되어 살짝 얼어 버리면 달콤한 맛이 줄어들고 서걱서걱 씹히는 질감이 아주 좋지만은 않지만 그래도 신나게 먹는다.

정말 맛있다. 나는 행복하다.









오늘 저녁은 이틀 전에 만들어 냉장고에 넣어 둔 카레로 라이스카레를 해 먹었다. 카레는 만들고 2~3일 지나면 훨씬 더 맛있어진다. 이렇게 그냥 내가 먹는다는 게 아깝게 느껴진다. 나보다 다른 누군가의 먹는 모습을 바라보고 싶은 맛, 이 라이스카레는 그런 맛이다.


덧글

  • An_Oz 2008/06/18 19:23 # 답글

    저도 인공체리향, 병조림 체리를 거쳐서
    진짜 체리를 눈앞에 두고 "흥 그래봤자-_-"라고 생각했는데
    (그래서 심지어 처음 먹은 체리는 제돈주고 산것도 아니었어요)

    ..........모든걸 뛰어넘더라고요 -_-;;;;;;;;;;;;;;;;;
    그래서 저도 냉장고에 지금 체리가... ㅠ_ㅜ
  • 랭보 2008/06/19 09:04 #

    저도 그동안 같은 생각으로 버티다 작년에야 처음 입에 대보았던 것이었는데... 결과는 참패... 무너졌어요 ㅠ_ㅜ
  • 2008/06/30 11:04 # 삭제 답글

    앗...먹구싶다~
댓글 입력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