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내가 사는 동네에는 나혜석 동상도 있고 그 이름을 딴 거리도 있다. 참 이 동네에 인물이 없었다는 생각을 한다. 나혜석에 대해서 여성해방과 평등 그리고 페미니즘 관련하여 이런저런 찬양의 글 일색인데, 우스운 건 그런 글의 대부분이 나혜석이 어떤 생각으로 무슨 활동을 했고 어떤 말과 글을 남겼는지 변변히 아는 것 없이 그저 세간의 평이 나도는 것을 보고 개가 소를 베끼고 소가 개를 베끼듯 끄적여 놓고서 스스로 뿌듯해 하는 글이란 점이다. 이번에도 우연히 그냥 생각없는 나혜석 페미니즘/선구자론에 물들어 적은 글을 보고 덧글을 남겼는데 삭제당하고 말았다.
꼴페미라는 표현은 좀 과격했지만 어떻게 보면 이 사람에게 적합한 호칭이라 생각한다. 게다가 그 글에 있는 나혜석에 대한 인물 해설은 그 내용이 미화된 측면으로 치우쳐 있어 사실과 미묘하게 다른 점이 신경쓰였다. 덧글은 얼마 있다가 삭제되었는데 꼴페미라는 표현때문이겠지만, 그게 혹시 나혜석이라는 사람에게 감히 그런 말도 안되는 단어를 갖다붙였다고 생각했기 때문인지 그 점이 궁금하다. 그정도로 나혜석이 구린 점이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는 않기에 닉네임이 어떻고 하는 소리도 들어가며 별도로 까일 이유까지는 없지 않나 싶다. 그 글을 쓴 사람은 어떤 TV다큐멘터리를 보았다고 하는데, TV 쪽이 치우친 건지 글쓴 사람의 시청소감이 치우친 건지는 알 수 없으나 그와는 별개로 나혜석을 어떤 의미로는 꼴페미라 불러도 될 만하다고 보는 나의 생각은 아래와 같다.
나혜석이 미술과 문학 방면에서 재능이 있고 여러 작품을 남긴 사람이었음은 분명하고 그 부분을 폄하할 생각은 별로 없습니다. 하지만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지요. 이를테면 이광수를 생각해 봅시다. 그의 작품은 근대 문학적 가치를 인정받고 있고 중등교육 교과서에까지 실려 있을 정도이지만 이광수라는 사람의 평가는 어떤가요. 그 사람의 행각은 그 시절의 상황을 감안한다 하더라도 비난을 피할 수는 없을 겁니다. 그렇다고 나혜석이 친일이라는 소리는 아닙니다. 오히려 그 당시 다른 신여성(김활란-_-;; 같은)들이 서슴없이 매국/친일쪽에 선 것과 비교해 그런 쪽으로는 뭐라 할 만한 일은 하지 않았죠. 물론 나혜석이 총독부 고관과 결혼한 것이라든지 그의 정체성 형성의 근원이 일본이라든지 그런 것들은 봐 주고요. 문제는 이 사람의 왜곡된 사랑관(?)에 있습니다. 시대 배경을 생각해 보면 사실 일말의 동정은 듭니다. 하지만 너무 일그러져 있단 말이지요. 그에 대한 일례는 나열하려면 한참 걸립니다. 일단 그의 일그러진 연애관이 형성된 이유는 크게 세곳에서 찾을 수 있는데, 하나는 근세 서구에서 여러 장르의 소재로 이용되며 미화된 로맨틱한 사랑(영주의 부인과 기사와의 사랑 같은...)에 대한 동경으로 인해 일종의 오리엔탈리즘에 빠져 버렸다는 점이고, 또 하나는 일본유학 시절 '히라쓰카 라이초'라는 여성이 발행한 '세이토'라는 페미니스트 잡지를 너무 열심히 읽어 열혈 추종자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하나의 이유는 뭐 말할 것도 없이 서구나 일본과 비교하여 근대화는 택도 없는 당시 우리나라의 사회분위기에 대한 반발이고요. 문제는 나혜석이라는 사람이 '페미니즘'이라는 주제를 당시 우리 사회에 대한 건강한 비평으로서 문제제기를 했다기보다, 일련의 자신의 개인행위를 정당화하는 자기변호에 빠져버린 면이 크고, 또 그 주장이 극단으로 치우친 발언이 많았다는데 있습니다. 자유연애를 주장하고 전근대적인 정조관념을 비판하는 건 좋지요. 나중에 물리기 어려운게 결혼이니 '시험결혼'을 도입해야 한다든가 일부일처제를 비판한다든가 이 정도도 흥미롭게 들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배우자 교환' 주장 같은 얘기까지 오면 이제 조금씩 맛이 가는 것 같은 느낌도 들고, 이 사람의 유명한 발언인 '배우자를 잊지 않는 범위 내에서 혼외 정사를 벌이는 것은 죄도 실수도 아닌 가장 진보된 사람의 행동일 뿐' 같은 주장은 막말로 하면 개 풀 뜯는 소리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 사실입니다. 결혼할 때 배우자에게 내건 조건들도 유명하지요. 그 조건 중 하나는 '죽은 자기 애인의 묘소에 돌비석을 세워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조건을 내세워 신혼여행길에 애인의 묘소에 다녀오는 좀 엽기적(?)인 행동을 하기도 했지요. 이 죽은 애인은 아마 26살에 결핵으로 죽은 최승구라는 사람인 것 같습니다. 페미니즘 운동이라고 보기에는 이해하기 쉽지 않습니다. 게다가 위의 혼외정사 발언은 결국 자신의 간통을 정당화하기 위한 구실이라는 의심도 떨칠 수 없지요. 물론 그가 뼛속까지 그런 신념을 갖고 있어서 간통을 한 것일 수도 있겠지만 어느쪽이라고 생각하든 간에 비난을 피하기는 힘들다 봅니다. 프랑스에서 만난 최린이라는 사람과 그렇게 불륜을 한 것을 이유로 귀국후 이혼을 강요당합니다. 나혜석은 이에 대해 공개적으로 매거진에 '이혼고백서'라는 글과 최린을 상대로 한 '손해배상청구소송'이라는 글을 기고하여 이슈화 하였습니다. 지금으로 보면 자신의 불륜을 소재로 언론플레이를 한 것이지요. 그렇게 해프닝을 일으킨지 몇 달 되지 않아 다시 또 한바탕 들고 일어납니다. 다시 그 매거진에 '신생활에 들면서'라는 제목의 글을 무려 '유언'이라는 명목으로 거창하게 발표하는데, 그 내용이란 그 불륜의 공간 파리로 죽으러 가겠다는 것으로 인용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청구씨여, 반드시 후회하고 있을 때 내 이름 한 번 불러주소. 사남매 아이들아 에미를 원망치 말고 사회제도와 도덕과 법률과 인습을 원망하라. 네 어머는 과도기에 선각자로 그 운명의 줄에 희생 된자이었더니라. 후일 외교관이 되어 파리 오거든 네 에미의 묘를 찾아 꽃 한 송이 꽂아다오."... 그는 그때 사남매의 어머니였습니다. 유언이라고 비장하게 적은 저 글을 보고 있노라면 일방적인 피해자와 선각자임을 자처하는 모습에 오히려 실없는 웃음이 나오곤 합니다. 나혜석의 이런 일련의 행동들은 좋게 보면 페미니즘의 주장이겠지만 막 얘기하자면 꼴통같은 행태와 무책임한 자기변호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한 관점에서 보면 나혜석을 보고 있노라면 어쩐지 지금 시대의 인물 중 마광수교수나 낸시랭 같은 사람이 떠오릅니다. 전자(마광수교수)는 나혜석의 그 독특한(?) 애정에 관한 신념이라는 점에서, 그리고 후자(낸시랭)는 똥인지 된장인지 모르고 어쨋든 미디어를 이용해 그것을 이슈화 하려는 점에서 말입니다. 마광수는 허구헌날 사람들에게 변태/또라이라고 까이고 있지요. 어떻게든 미디어를 통한 노출을 통해 이슈화하려는 낸시랭을 보면서 우리는 저열하고 천박하며 개념이 없다 욕합니다. 이미 지나간 사람에 대해 그의 어처구니 없는 면을 까는 것도 그런 것의 연장선상에 다름 아닙니다. 나혜석의 일화 및 기타 더 얘기하고 싶은 말은 이 이상 많지만 추측성 부분도 있기에 더 적지는 않겠습니다. 나혜석은 그의 재능 면에 있어서 재조명 될 만한 부분이 있는 건 사실입니다. 그리고 그의 이런 극단적인 연애사상 및 여성해방 주장에 대해서도 좋게 보면 재조명해 볼 필요가 있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건 나열한 그의 행동들을 완전히 긍정적으로만 해석했을 때의 이야기이고, 사실 까놓고 얘기하자면 꼴페미라는 말을 붙인다고 해도 그렇게 부른 사람을 비난만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