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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7/05   [2008] 오키나와 낙도 기행 3 [4]
[2008] 오키나와 낙도 기행 3
숙소의 카운터 옆에는 알림판이 하나 있고 각종 찌라시가 놓여 있는 진열대가 있다. 알림판은 다이빙샵이나 다른 가게에서 여기 손님에게 전달할 사항이 있으면 적어 놓는 곳이다. '내일 픽업 시각은 09시입니다' 같은 내용이 적혀 있다. 그 옆의 진열대에는 각종 전단지가 있는데 렌터카라든지 스노클링투어라든지 카누투어라든지 그런 장사를 하는 가게들이 자기네 홍보 전단을 만들어서 각 숙소에 비치해 두는 거다. 미리 뭐를 할지 매일의 일정을 다 정해서 예약까지 하고 온 게 아니라면, 대충 이 전단지들을 쭉 보고 하고 싶은게 있으면 전화를 해서 날짜와 시간이 맞으면 그걸 하면 된다.

8月 7日

벌써 이리오모테에 온지 5일째다. 그렇다고는 해도 매일 새벽같이 고기잡으러 나가서 저녁에 돌아오는 노동만 하고 있었으니 섬 구경 한 번 제대로 못 했다. 작년에도 똑같았다. 그때도 여기 이리오모테섬에 있는 3일동안 비치 한 번 강가 한 번 산 속 한 번 안 들어가 보고 나왔다. 이리오모테섬 같은 곳에 와서 그게 말이나 되는 일인지. 아마존 뺨은 못 칠 정도지만 그래도 아열대 밀림으로 우거진 이 로스트월드같은 곳에서 그런다는건 그냥 시크하다고 하고 넘어가기에도 너무 심한 일 같은 생각이 자꾸 드는 거다. 그리고 얌전한 금수강산같은 자연밖에 본 적 없는 우리 동방예의지국 사람들은 대개 그렇겠지만 나도 그 열대의 정글 같은 것에 대한 동경이랄까, 괜히 그런데 가면 무슨 인디아나존스같은 모험을 자동으로 하게 되고 그러는건 혹시 아닐까 하는 환상 비슷한 걸 갖고 있었기에, 이번엔 지구 온난화로 언제 모두 새하얗게 불태우고 사라질지 모르는 바닷속을 보는 걸 하루 제끼고 강을 거슬러 올라가기로 했다.

하루 동안에 풀코스를 하려면 카누 투어가 제격이다. 목적지는 이쪽 오키나와현에서 가장 낙차가 크다는 '피나이사라 폭포[ピナイサーラの滝]'로 잡았다. 여기 폭포 위에 올라가면 정글의 진면목을 볼 수 있으니까 일단 초짜라면 여기로 가는게 안전빵이다. 그저께 다이빙에서 돌아오고서 오오하시상과 슬슬 숙소 로비에서 담배나 피우면서 쉬고 있을때 전단지를 좀 훑어 봐서 가게를 골라 두었다. 내가 다이빙 3일 한 후에 그 다음날은 카누를 타고 피나이사라 폭포에 갈거라고 하니 오오하시상이 참 이해를 못하겠다는 얼굴로 날 쳐다봤다.

"Lee상, 왜 그런 고생을 돈주고 사서 하려고 해. 지금같은 시기에 하루종일 밖에 나가서 노 젓고 산에 올라가는건 미친짓이야. 그건 관광도 여행도 아무것도 아니라고. 그건 수행이지. 그래 수행이라고." 이렇게 말하고선 자기는 그날 '파이누마야 리조트[Painumaya Resort]'에 있는 온천에 가서 신선놀음이나 할 거라며 놀렸다. 젠장~ 나 정말 삽질하는거야?



일일 수행을 위해 찾아간 '카자구루마[風車]'라고 하는 카누 투어 가게다. 직접 내발로 찾아간 건 아니고 전화 해서 날짜를 잡으면 아침에 차로 여기 가게까지 실어다 준다.

이 찜통같은 날씨에 대충 아침 9시반 정도에 출발해서 돌아오면 3~4시 정도 되는 수행길을 떠나려는데...

그런데 내가 진짜 너무 아무 생각 없이 왔다. 그냥 수영복 겸용의 반바지에 위에는 반팔 래쉬가드 하나, 열라 노 젓고 산 올라가야 하는데 주전부리 하나 챙긴 거 없고, 모자? 썬크림? 그게 뭐죠 먹는건가효? 투어 가게에서 점심은 준다는 말만 듣고 그냥 진짜 빈손으로 카메라 하나에 수건 한 장만 덜렁 들고 왔는데 그나마 출발 전에 가게에서 얼음이 든 작은 물통을 하나씩 쥐어준다. 뒤늦게 비장한 처지를 깨달은 내가 무슨 생명수라도 되는 것처럼 깍듯이 그걸 모셔 받아 두는데 가게 사람이 그러면서 한마디 한다. "아마 그거 갖고는 택도 없이 모자랄 거에요" 뭐야~ 지금 이사람이 누구 약주고 병주는거야!

속으로 버럭했는데 그게 아니고 사실은 약주고 병주고 그 다음에 약파는 거였다. "가게에서 PET병에 든 이온음료를 팔고 있으니 필요한 만큼 더 사서 가세요. 보통 두 병 정도 더 사가면 됩니다." 얼른 두 병 더 사서 챙기고. 그렇게 500mL 생명수 세 병만을 가진 채 금일 수행을 출발했다.



가게에서 차를 타고 일이십 분 정도 섬 안쪽으로 들어가더니 내리란다. 그리곤 구명조끼랑 노를 하나씩 받고 카누 타는 곳으로 걸어간다. 걸어가기 전에 저 노 젓는 법에 대한 강의를 하고 다 같이 2열 횡대로 서서 땅 위에서 휙휙 노 젓는 연습을 한다. 이걸 꼭 강의하고 연습까지 할 건 없겠지만 운동신경 둔하고 기계치인 여성분들 중에는 의외로 삽질하는 사람도 꽤 있으니 그러려니 했다. 우리 일행은 가이드 한 명까지 해서 8명으로 나만 혼자 왔고 그 밖에는 두 명씩 3쌍이었다(여-여 커플 포함). 자연스럽게 나는 가이드와 커플링 성립... 저 오른쪽에 배낭 큰거 두 개 메고 가는 사람이 가이드이다. 이게 하루에 인당 8,500엔인데 사실 카누대여와 점심값 말고는 다 인건비라 볼 수 있는 거다. 저 고생을 하니.



카누 타는 곳까지 가는 중에 보니 군데군데 '사가리바나[サガリバナ]'라는 꽃이 몇 송이 떨어져 있다. 사가리바나[下がり花]라는 꽃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7월 경 한밤중에 꽃을 피워서 밤사이 그걸 떨어뜨리는 희한한 녀석인데, 한창일 때 그 자리에 가 보면 저 솜털같이 생긴 꽃송이로 온 천지가 가득하다. 주로 강가에 살기 때문에 7월에 날짜를 맞춰서 아침에 카누를 타고 강으로 나가면 뿅가는 풍경을 볼 수 있다고 하는데 지금은 8월일 뿐이고... 그냥 저렇게 몇 송이 보는 것만이라도 감지덕지해야지.



카누 있는 곳에 다 와서 각자 알아서 저 플라스틱 카누를 하나씩 뽑아다가 물에 띄우고 장렬히 출발하는 거다. 사실 플라스틱 카누라서 조금 실망도 했다. 이왕이면 제대로 된 카약/카누를 타고 싶었는데. 근데 카누투어는 사전에 자세히 알아보질 않고 와서 숙소에 있는 전단지만 보고 고른 거라 뭐 자업자득이랄까.



플라스틱 카누는 제대로 된 진짜 카누에 비해 짧고 뭉툭하고 뭐 그렇다. 그래서 속도는 더 안 나지만 방향전환같은 건 쉽게 된다. 부력도 제법 있는 편이어서 1인용 플라스틱 카누에 강호동 같은 사람이 타도 충분할 것 같았다. 귀여운 여자애가 있는 젊은 남녀커플은 2인용 카누에 탔는데 역시 여자애는 추진력에 별 도움이 안 된다. 여자가 귀여우면 남자가 고생하는 법이다.



물 위에 떠 있는 '사가리바나' 한 송이.



그렇게 다들 카누를 챙겨 타고서 강을 거슬러 올라간다. 가이드 말로는 한 삼십 분 정도 노 저어 가면 된다고 한다. 처음 출발 부분은 강이 지류라서 좁고 아늑한게 은근히 분위기 있었다.



저 앞에 있는 무리는 다른 가게에서 온 아줌마팀들이고, 나는 가이드 뒤를 바짝 붙어 2위로 질주한다. 역시 이런 걸 하면 싱글은 커플보다 훨씬 빠르다. 내 카누 빨간색도 아닌데 세 배 빠르다.







좁은 지류를 지나 강의 본류와 합류하니 바다와 거의 접한 하구라 그런지 폭이 꽤 넓은게 제법 박력이 있다. 합류지점에서 왼쪽으로 가면 바다로 빠지는 방향인데 바다쪽을 보니 저기 바다에서부터 오는 철인들도 좀 있다. 오른쪽으로 틀어서 상류쪽으로 열심히 간다.



강 가장자리는 이렇게 빽빽한 맹그로브의 숲이다. 귀여운 새싹들도 있고. 맹그로브라는 것은 특정 식물의 이름이 아니고 이렇게 민물과 바다가 접하는 곳에서 뿌리를 내리고 사는 식물들을 통칭하는 말이다. 그러니까 이렇게 사는 식물들은 이놈이든 저놈이든 다 맹그로브라 부르는 거고, 이 사진에 있는 놈들 진짜 이름은 '야에야마 히루기'였던가...



열라게 노를 저어 거슬러 올라가면 저렇게 멀리 폭포가 보이기 시작하고 카누 정박장소가 나온다.



카누는 타고 내릴 때가 가장 고도의 균형감각이 필요하다. 사실 누가 잡아주지 않고는 초보라서 잘 못내리겠더라. 내리려 좀 몸을 일으켜 이동할라치면 뒤뚱거리면서 뒤집히려고 한다. 여기에 카누를 파킹시켜 두고 이제는 숲 속을 걸어간다.



오늘 일정은 먼저 폭포 아래에 갔다가 거기서 점심을 먹고 다시 폭포 위를 간다. 일단 폭포 아래를 가는 거니 조금 내리막이기도 하고 뭐 아직은 무난하다. 잡목들이 빽빽하게 우거진 사이로 간간이 꽃도 피어 있고 그럭저럭 갈 만하다. 폭포 아래까지 가는 데에는 아무 어려움이 없단다. 시간도 금방이다.



여기가 '피나이사라 폭포'의 아래쪽이다. 오키나와현을 통털어 가장 높은 폭포란다. 장마가 끝난지 좀 지나서 그런지 물의 양은 좀 적었지만 그래도 아래에서 보니 제법 웅장한게 볼 만했다. 뭐 이 폭포 자체를 보기 위해서 여기 온 게 아니라 여기까지의 과정을 즐기는게 목적이긴 하지만 그래도 골이 있어야 기쁨도 있는 거고.



폭포 주위의 모습



이런데 오면 꼭 하는 것.



아무리 과학이 발달하고 시대가 흘러도 사람들의 행태는 변하지 않는다. 이삼십 년 전 나 어렸을 때 계곡 같은데 가서 찍은 사진에도 저런 사람들이 잔뜩 찍혀 있고 그건 21세기 와도 마찬가지다.



점심식사 제공이라고 해서 나는 당연히 도시락 같은 것일 줄 알았는데, 가이드가 그 큰 배낭 속에서 버너를 꺼내 뭘 막 끓이더니 뜬금없게도 오키나와 소바가 점심으로 나왔다. 여기 사람들 참 오키나와 소바 좋아한다. 여기까지 와서도 이걸 주다니. 내 생각엔 도시락보다 단가가 싸게 먹혀서 그런 것 같다. 그래도 참 맛있었다. 오키나와 소바는 면이 내 취향이 아니라 아주 좋아하진 않는데 역시 시장이 반찬이다.


점심을 먹고 좀 쉰 다음에 이제 진짜 최종보스인 폭포 위를 향해 출발했다. 이번엔 오르막인 데다가 시간도 꽤 걸린다고 한다. 폭포 밑에서 사람들이 하도 많이 물장난을 하고 있길래 물도 아주 깨끗한 거 같지도 않고 해서 난 물에 안 들어갔는데 좀 몸이라도 적셔놓을 걸 그랬다.



가운데 저 낙엽같이 생긴게 곤충이다.



이게 아마 '사가리바나'의 꽃봉오리일거다. 저게 다 무르익으면 밤이 되길 기다려 활짝 핀 다음에 땅으로 떨어지는거다.



기괴한 뿌리부분 생김새때문에 유명한 '사키시마스오우 나무[サキシマスオウノキ, 先島蘇芳木]'라는 놈이다. 옛날에는 저걸 가지고 배의 키로 썼단다.



나무를 보더니 아까 노를 안 젓던 그 귀여운 여자가 좋아한다. 남자애도 수염이 멋있게 난 게 제법 괜찮아 보이던데.



사키시마스오우가 뭐 어떻든 간에 그냥 막 올라가는 거다. 올라가다 옆을 보면 그래도 꽤 시원스런 경치가 보여서 힘이 될 것도 같지만 사실은 개뿔 힘 하나도 안 되고 그저 담배 한 대 피우고 싶어 미칠 지경이다.



그저 가이드상의 뒤통수만 보고 가는 거다. 이미 커플은 저 뒤에 쳐져 있음.



나중엔 다들 말도 없고 묵묵히 올라가기만 해서 도착한 폭포 꼭대기. 왼쪽에 흐르는 저 물이 폭포가 되어 떨어지는 거다. 그냥 개울이 위치선정 잘 해서 출세했구만. 아무튼 저질 체력으로 여기까지 오느라 죽는 줄 알았다.



이거. 요고 보려고 온 거지. 폭포와 절벽 그리고 내려다 보이는 밀림과 강줄기, 먼 바다... 타잔 영화같은데서 보던 그런 풍경 말이다.



아래를 내려다 보면 폭포 밑에서 놀고 있는 사람들이 개미새끼만하게 보이고.



근데 내려다 볼 때는 절대로 이렇게 다들 낮은 포복으로 기어가서 본다. 저 벼랑 끝에 서 있으면 심장이 쫄깃해지는 느낌이 나는데 난 약간의 고소공포증이 있는 사람이라 아주 염통에 자극 제대로 되더라. 그리고 막 뛰어내리고 싶은 충동 일어나고.



이런 데 오면 꼭 하는 것 2.



바보는 높은 곳을 좋아한다던데 내가 꼭 바보라 그런 건 아니지만 역시 높은 데서 보는게 제맛이다. 이리오모테 초짜라면 꼭 한 번 와서 볼 만한 경치이긴 하다.





가이드가 혼자서 뭘 열심히 하고 있나 했더니 우리 간식 주려고 파인애플을 까고 있다. 여기 망고는 비싸고 별로인데 파인애플은 맛있다.



귀여운 애는 붙임성도 좋은 법이다.



난 혼자 오는 거에 불만 없지만 커플이 좋긴 좋구나. 젠장~



목적지까지 다 와서 먹을 것도 다 먹고 구경도 다 했지만, 현실에선 그걸로 게임오버란 건 없고 돌아가는 고행길이 남아 있는 법이다.



이봐 이봐 또. 귀여운 아이는 노를 젓지 않는다. 뒤에 남자애만 팔 떨어지게 젓는 거다. 그래도 귀엽기 때문에 남자애가 젓다 젓다 욱해가지고 실수인 척 노로 뒤통수를 가격하는 일 같은 사고는 벌어지지 않는다.



하류로 가는 거라고 그냥 가만 있으면 가고 그러는 거 없다. 무조건 막 저어야 간다. 하구라 그런지 강 흐름이 참 느리다.





귀여워도 힘든 데 장사 없다. 결국 남자애 열불나서 노 젓는 거 때려친 듯.



'아당'이라고 하는 식물이다. 꼭 파인애플 비슷하게 생긴 열매를 맺는데 저걸 사람이 식용으로 하기에는 달긴 하지만 맛이 좀 그래서 잘 먹진 않는다. 야자게가 환장하는 먹이이다. 파인애플이 땅에서 열린다고 충격받았다고 고백하는 쌀나무 수준의 자연이해도를 가진 사람들이 온라인상에 많이 있는 것 같은데, 그 사람들은 아마 '아당'이 열리는 것처럼 나무에서 열리는 걸 상상했던 게 아닌가 한다.



이건 이름 모를 무슨 빨간 열매.



나란히 자라는 맹그로브 새싹들.



돌아오니 난 거의 구운 시체였다. 이날 밤에 숙소 로비에서 오오하시상과 같이 작별의 술잔을 기울였는데, 오오하시상이 내 몰골을 보고 아주 재미있다는 듯이 수행 잘 갔다왔냐며 놀렸다. 사실 난 오오하시상 온천 간 것도 별로 안 부러운데... 이렇게 더워 죽겠는데 무슨 얼어죽을 온천은 온천이야. 뭔가 관용구가 문장과 호응이 좀 맞지 않지만 그렇게 이리오모테에서의 마지막 날 밤을 보냈다.

내일부터는 이시가키섬의 바다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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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랭보 | 2009/07/05 02:24 | 오키나와 여행 | 트랙백 | 덧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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